1월에 다녀온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무대가 되었던 에치고유자와를 다녀왔습니다.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을 통하여 <겐지 이야기>에 담긴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왜 <겐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를 1952년에 발표한 <소년>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소설은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사이카쿠 사이에 공백이 크다.(10쪽)” 헤이안 시대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겐지 모노가타리>는 서기 1000년 무렵의 작품인데, 사이가쿠는 에도시대를 풍미한 이야기꾼이니 17세기의 작가로 무려 600여년 동안 주목할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랑하던 14세기 말의 요시노 조정 사람들이나 전란에 시달리던 무로마치 시대(1336-1573년)의 사람들 역시 <겐지 모노가타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것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시 “전쟁 중 공습이 점점 거세지던 와중에 등화관제로 캄캄한 밤, 혹은 요코스카 열차에 오른 무참한 모습의 승객들 속에서 (기타무라 기긴이 1673년에 편찬한) <겐지 모노가타리 고게쓰쇼>를 읽었다.”는 것입니다. 비탄에 잠겨 <겐지 모노가타리>를 읽었을 옛사람의 마음이 사무치게 다가와, 나는 흐르는 전통과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겐지 모노가타리>의 여행을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치매 전문가 사이토 마사히코가 쓴 <알츠하이머 기록자>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겐지 이야기>를 읽어드렸다는 대목을 읽고서는 일본사람들이 <겐지 모노가타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끼게 되었고, 마침 동네 도서관에 겐지 이야기(1-10)이 있는 것을 보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중학교 2-3학년 무렵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학교의 작문숙제는 물론 일기를 통하여 습작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에 다니던 스물네살 때 <유가시마의 추억>이라는 글을 썼는데, 스물여덟 살에 이야기의 전반부를 고쳐서 <이즈의 무희>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유가시마의 추억>의 후반부는 중학 시절 기숙사 방을 같이 썼던 소년과의 추억을 적었는데, 그 내용을 <소년>에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말하기로 <이즈의 무희>는 <유가시마의 추억>이라는 수필의 원형 그대로 소설이 되었는데, <소년>의 경우는 소설답지 않을 수 있겠다면서도 원형을 살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중학시절 기숙사의 방장을 할 무렵 방을 같이 쓰던 세이노에 관한 이야기가 <소년>의 중심입니다. 먼저 세이노가 믿고 있던 오모토교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일본의 신토(神道)계의 신흥종교로 흔히 오모토교(大本敎)라고 하지만, 정식으로는 오모토(大本)라고 한답니다. 1892년 데구치 나오(出口なお)라는 여성에게 간방의 금신(艮の金神)이 신내림한 것을 교단의 기원으로 본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가에 있는 집 근처에 있는 폭포를 맞으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가 자신은 오모토에 투신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세이노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는 기숙사 방을 같이 쓸 때 세이노를 비롯한 여러 남학생들과 동성애라 할만한 짓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일본의 전통 종교 신토에서는 성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는데 동성간의 성애 역시 규제될 사항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동성애는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메이지 시대까지지 보편적인 사회현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나는 지금 이 <소년>을 썼기에, <유가시마에서의 추억>가 오래된 일기와 세이노의 옛 편지를 모두 소각한다.”라고 <소년>을 마무리합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을 쓰기 위하여 수집한 자료는 보관하는 것인데,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굳이 관련 자료를 소각했다고 한 이유는 <소년>의 이야기가 지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낳게 했던 모양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사소설이 인기를 구가했는데, 아무리 소설이라고 진짜가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조카를 사랑한 시마자키 도손, 제자를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다야마 가타이, 아버지와의 불화로 괴로워하는 시가 나오야 등이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들이었다고 합니다. 사소설의 아주 철저한 자기 고백의 문체를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동경하며 성장한 작가들은 사소설의 분위기가 가미된 진짜인 듯 진짜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써냈다고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등은 모두 1948년에 집필된 것으로 이와 같은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