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책 <설국을 찾아서>에서는 금년 1월 여행사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행과정에서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마쿠라도 가보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엔가쿠지를 비롯하여 가마쿠라 해변에 가서 작품 속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가마쿠라의 해변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무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를 읽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2019년 열린 제76회 베네치아 영화제의 경쟁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된 고레에다 감독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감독의 영화론이자 자전적 영화 수필이라고 합니다.
책은 일기 형태로 되어 있는데, 2018년 8월 23일 자부터 시작하지만, 중간에 5월 21일, 8월 24일로 이어지더니 2017년 9월 3일부터 12월 12일까지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촬영에 들어가 마무리할 때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배우들과의 면담, 촬영장소의 선정, 대본작업, 촬영 시의 배우들의 동선 등, 감독 업무와 관련된 자료들을 비롯하여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담아냈습니다.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 작업을 하는 감독들, 배우들, 그리고 작품들에 관한 뒷이야기들도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내가 경험한 이런저런 일을 내 나름대로 재미있어하며 썼다. 영화 감독이란, 영화 찍기란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이구나, 하고 조금이라도 생각해주면 좋겠다.(22쪽)”라고 서문을 마무리했습니다.
2019년에 제작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시작은 2003년이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 극장에서 공연할 연극으로 준비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제목은 <이렇게 비 오는 날에>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말년에 이른 노년의 여배우가 레이먼드 카버의 희곡 <대성당>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무대 뒤에 있는 분장실에서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고 중얼거리는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2011년 2월 쥘리에트 비노슈 배우가 일본에 왔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나서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라고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막상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줄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0월 파리에서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배우들이 남긴 명언도 읽을 수 있습니다. 폴 뉴먼 배우는 “나는 재능이 없다. 내 장점은 끈기뿐이다. 베티 데이비스는 ‘나약한 인간에게 늙는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나도 지금 나이와 싸우는 중이다.(42쪽)”라고 했답니다. 카트린 드뇌브 배우는 “우리 어머니는 친구나 낯선 사람이 ‘딸들이 참 예쁘네요’라고 할 때마다 ‘어린애한테 외모를 칭찬하는 말을 하면 안 돼요’라고 했어. 외모는 타고 난거지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니까 칭찬할 필요가 없다고 전부터 말했거든.(52쪽)”라고 했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로 보이는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게 내가 <감저으이 기억>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115쪽)”라는 말도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감독 알랭 러네는 “섹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와 그다음이 재미있다.(193쪽)”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관련해서는 카트린 드뇌브 배우가 칸 영화제의 상영에 와주었고, 상영이 끝난 뒤에 손키스를 날려주었다고 하며, 식당에서 만난 아야세 하루카(綾瀬 はるか) 배우[장녀 코다 사치 (香田幸) 역] 배우에게 “모든 여배우가 그 자리에 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당신은 참 운이 좋네.(51쪽)”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요시다 아키미라는 작가가 그린 9권짜리 만화가원작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의 흐름이 마구 뒤섞이는 느낌이지만, 톡톡 튀는 듯한 생각들이 반짝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 일기는 꾸준하게 써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