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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님의 서재
  • 벚꽃나무 아래
  • 가지이 모토지로
  • 12,600원 (10%700)
  • 2021-04-16
  • : 236

카지이 모토지로(梶井 基次郞)의 단편소설집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제목이 주는 섬뜩한 느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N해안에서 만난 K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K의 죽음’은 일본탐미주의단편선집에서 이미 읽어본 바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이과에 진학했지만 문학과 음악에 흥미를 느껴 대학은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초기에 치료에 소홀하게 되면서 병이 깊어졌고, 그때는 요양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투병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가 작품에 반영되어 그의 작품들은 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탐미주의 계열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는 ‘태평스러운 환자’, ‘칠엽수꽃-어떤 편지’, ‘바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겨울 파리’, ‘레몬’, ‘애무’, ‘작은 양심’, ‘K의 죽음’, ‘벚꽃 나무 아래’, ‘눈 내린 뒤’, ‘게이키지’ 등 12편이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작품 ‘태평스러운 환자’의 주인공이 작가처럼 폐결핵을 앓고 있는데, 서너 편에서 결핵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표제작인 ‘벚꽃 나무 아래’에서는 벚꽃이 화사한 이유는 분명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있어 뿌리가 수정 같은 수액을 빨아올린다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병상에서 구상된 것인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막연한 희망을 뒤쫓지도 않습니다. 히라타 지사부로(平田次三郞)는 가지의 모토지로의 작품은 ‘병든 삶의 표현’이었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맑고 깨끗한 삶의 숨결’이라고 했습니다.


‘애무’에서는 고양이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깨물기도 하고, 전철표 천공기로 구멍을 뚫는 상상을 하는데, 심지어 고양이의 주인은 발을 잘라 화장하는데 소도구로 사용하기까지, 끔찍한 상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태평스러운 환자’에서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하여 송사리를 다섯 마리씩 삼킨다거나, 인간의 뇌수 구이가 치료약이라고 소개하는데, 제가 어렸을 적에는 나병에 어린 아이의 간이 특효약이라 하여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도 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치의 병에는 무엇무엇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을 작품에 반영한 셈일 것 같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삶을 담은 소설을 일본에서는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합니다. 심경소설(心境小說)과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의 <후톤(蒲団)>이 사소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만, 히라노 켄(平野謙)은 1913년의 치카마스 아키에(近松秋江)의 <기와쿠(疑惑)>와 기무라 소타(木村莊太)의 <케닌(牽引)이 사소설이 확립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와카이(和解)>는 심경소설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를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폐결핵 환자의 90%는 약다운 약도 없이 죽음을 재촉하는 형편이고 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병의 괴로움을 굳세게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쪽도 견딜 수 없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겨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폐결핵을 앓아 31살에 죽음을 맞은 천재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에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한 마루젠 교토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의 무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 폐업하게 되었을 때는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의 예술서적 구획에 레몬을 놓아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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