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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님의 서재
  • 타임 셸터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 16,020원 (10%890)
  • 2024-11-29
  • : 15,890

제목과 함께 ‘나는 기억한다, 과거를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라는 광고 문안에 끌려 읽게 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입니다. 불가리아 작가 책으로는 처음인 듯합니다.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타임 셸터>는 2023년 인터네셔널 부문의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제목이기도 한 타임 셸터(time shelter)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우스틴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과거를 시간대피소라고 할 수 있을 거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억을 잃는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 등 어떤 이유에서든 기억 쇠퇴를 겪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시간대피소를 마련해주는 요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환자들의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단순히 작은 공간일 수도 있고 그 공간을 확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우스틴은 과거요법이라고 하는 진료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련한 과거요법은 1965년의 소환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우스틴의 첫 번째 진료소는 스위스에서 문을 열었는데, 이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을 기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치매환자를 위한 비약물요법 가운데 회상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의 지나온 삶과 관련된 것(과거 사진을 대표적으로 사용합니다)을 이용하여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법입니다.


가우스틴의 과거요법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됨에 따라 다양한 시기의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같은 성격의 진료소들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덴마크의 항구도시 오르후스에는 옛날식 주택으로 이루어진 민속마을을 조성하여 여행객들에게 과거의 삶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특정 시간대에는 기억상실 환자들이 입장하여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합니다.


시간대피소에서 주목하는 감각은 후각입니다. “나는 기억의 텅 빈 굴에서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것은 향기의 기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후각이 일찍 형성되는 감각이기 때문일 테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맨 마지막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는 작은 동물처럼 떠나간다.(121쪽)”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이아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포세이돈과 엮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지는데, 신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요정 칼립소에 붙들려 행복하게 보내는 시절도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면 불멸의 삶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은 일종의 시간대피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와 보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생산하고 있다.(172쪽)’는 명제를 내놓으면서 유럽사회에서는 과거로의 회귀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됩니다. 나라마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과거의 시점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 국민들의 성향이 다른 탓에 그 시기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화자가 불가리아 국민인 까닭에 불가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불가리아 항공은 공항에 도착하면 파샤 흐리스토비가 부르는 <불가리아 장미 한 송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이야기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다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전통의 축제의 현장도 묘사하고 있어 지난해 다녀온 불가리아 여행에 관한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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