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불쌍한 것은 아니야. 가난한 것은 그냥 가난한 거야. 가장 불쌍한 사람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P57
돌멩이는 장독 뚜껑을 눌러 놓는 데 쓸모가 있고, 개똥은 나무 거름을 주는 데 쓸모가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다. 골방철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잘 궁리해 보면 그도 반드시 뭔가 한군데쯤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짝에도‘ 라는 말은 좀 이상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정 쓸모가 없다면, 골방철학자더러 돌멩이 대신 장독 뚜껑 위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P98
"하긴 내가 좀 남달라 보이기는 할 테지.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을 때로 미친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한단다."- P101
"[…] 기침은 정말 짜증나는 거야. 사람들의 편견은 꼭 가래침 같단다. 칵 뱉어 버리고 싶지만, 목구멍에 찐득찐득 달라붙어 뱉을 수가 없지. 너는 이런 심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P102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P108
낭만은 생활을 벗어난 자리에나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창 넓은 찻집에 앉아 비 오는 날의 낭만적 분위기를 즐기는 요즘에도, 지붕 위에서 부엌 바닥에서 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든지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 시대의 낭만이란, ‘대단히 미안한 짓거리‘이기 일쑤인 것이다.- P137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종종 느닷없는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느닷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예전의 나‘와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나‘—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혼란에 빠져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P143
모든 것이 갑자기 변했다. 마치 내 몸이 신비롭게 빛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신비로운 빛 때문에 나는 예전의 평범한 소년으로는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으리란 생각마저 들곤 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남에게 주목받는 삶에는 대단히 짜릿한 즐거움이 있었다.- P151
"참 이상한 일이야. 뭔가 아쉽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더욱 아쉬워지게 되거든. 그래서 때때로 악당이 되어 버리지. 공연히 트집을 잡고 공연히 화를 내고······."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속만 부글부글 끓이다가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지."
[…]
"사랑을 하면 기대하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운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공연한 투정도 부리는 건데, 상대방은 결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아. 단지 못된 성깔을 가졌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P163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 주든, 한 번 떠나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슬픈 거야······."- P173
—검은제비는 지금 잘 있습니까?
제 아버지가 그러했듯,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그만 덜컥 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만 것은 아닙니까? 무능한 아버지 대신 이번엔 무능한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는 것은 혹 아닙니까? 술을 마시고 제 아버지와 똑같은 주정뱅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무엇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동네 사람들한테 하염없이 하소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하여 이번엔 검은제비의 아들이 뾰족한 송곳을 나무에 꽂으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P182
물론 이해할 수 없었다. 아홉 살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허영심까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므로. 그러나 허영심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맹장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조차 기필코 차지하려 드는 멍텅구리들이 세상에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P198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어찌 되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P203
인간은 도대체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황홀하든 끔찍하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도리밖에는 없는 것이다. 고단한 세상살이를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 저 혼자 아무리 고고하고 우아해지려 애써도, 세상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 버려두는 법이 없다.- P242
어머니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숲 속에서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배웠던 것이다.—어떤 슬픔과 고통도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회피하려 들 때 도리어 더욱 커진다는 사실!-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