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선이 얽히며 나무들이 몸을 드러낸다.
잎이 없으니 그려야 할 잔가지가 많다.
눈이, 손이 나뭇가지를 좇아간다.
나무 하나하나가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와 가지 사이가 하늘이다.
줄기와 줄기 사이로 길이 열린다.
밟을라 조심스런 발자국을 따라,
누웠던 풀잎들이 일어선다.
누군가는 쌓고 누군가는 무너뜨렸을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가만히 손을 얹어 본다.
체온에 녹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누군가는 동백꽃에 죽음을 떠올린다지만
내게는 종낭꽃이 그렇다.
수의도 입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하얀 죽음들을 주워 한데 모았다.
소복이 쌓인 꽃들을 쪼그려 앉아 그린다.
그린다는 것은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숲이 말을 걸어 온다.
"죽는 것이 더 슬펐을까? 잊히는 것이 더 슬펐을까?"
숲에서 돌아서는 길, 누군가 나무에 매어 놓은 팻말이 눈에 박혔다.
"우리 아직 죽지 않았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