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차가 콘크리트 경사로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며 자동차 바퀴에 모래 밟히는 소리가 나자 휴이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휴이는 이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차로 바닷가를 지나가는 느낌, 모래 위를 구르는 바퀴의 부드러운 느낌,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줄지어 선 파도들.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정원을 둘러싼 돌담, 갈라진 길, 회색 등을 한 딱정벌레로 가득한 별채, 하얗게 페인트 칠한 벽 옆의 침대, 잔디밭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창문이 갑자기 마음에 떠오른다. 휴이는 저 기억나요, 저 이제 기억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 말들을 머릿속에만 간직하고 가두어놓는다.- P401
생각을 해야만 한다. 세상에, 하지만 이 좁아터진 오두막 안에서 어떻게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겠는가. 가족들이 다 있는 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풍겨 나오는 기운만으로 죄다 감지 해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P403
에이바는 최근 벌어지는 일들의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런 일련의 생각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전혀 쓸모가 없다. 벌어질 일은 벌어질 것이고 보통 거기에는 그 어떤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건—이건 다르다. 이것은 태어나려고, 시작하려고, 이제 막 태동하려고 한다. 인생에서 수많은 인물이 멀어져가는 것 같은 바로 이 순간에.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P411
에이바의 눈 뒤가 시큰해지더니,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 와글거리는 느낌이 모여든다. 글자가 쓰여 있는 종이를 너무 오래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하지 못할 때 드는 느낌처럼, 조심하지 않으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미끄러지고 빠져나가 무엇으로도 변형돼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P412
전화선을 따라 정적이 흐른다. 거대한 침묵의 바다가 둘 사이에서 펼쳐지고, 높이 솟았다가, 굽이친다.- P417
그 말이 공기 중에 터져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 같다. 그 말은 좁은 전화박스 공간의 뜨거운 공기를 날아 머리 위를 맴돈다. 에이바는 문을 슬쩍 열어 그 틈새로, 벌 떼가 벌집에서 날아가듯, 그 말이 빠져나가 저 바깥세상으로 나가버리게 만들고 싶다.- P418
이제 둘은 함께 발을 맞춰 걸으며 오두막집으로 돌아간다. 모니카는 자신과 에이바가 이럴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완전히 똑같이 발맞춰 걷는 것. 이처럼 똑같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함께 걸었던 그 모든 세월에서 비롯된 걸 거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고, 가게에 갔다 돌아오고, 버스 정류장에, 지하철에, 도서관에.- P425
모든 잎사귀 사이사이에 잔물결이 일듯 둘 사이의 공기가 가장 혼란스럽게 동요한다.- P426
"피곤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에이바가 묻는다. 눈은 이미 감겨 있다.
"몰라." 모니카가 말하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치만 네가 이미 시험해봤을 거라고 생각해."- P428
그레타가 일어난다. 할 일이 생겨 기쁘다. 그레타는 일상에서 뭐가 잘못돼가고 있거나 말거나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게 싫다. 누구나 눈앞에 할 일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 그 일이 얼마나 사소한지와는 관계없이.- P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