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uroo4님의 서재

그는 학부모의 밤, 주일 학교 소풍, 거리 파티, 미사 후의 행사에서 다른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왜 저런 어머니를 가질 수 없는지 의아했다. 날씬하고, 멋지고, 대체로 조용한 어머니. 왜 내 어머니는 비만이고, 특이하게 옷을 입으며, 저렇게 시끄럽고, 거리낌 없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모두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인 걸까? 그는 부끄러움에 몸이 움츠러든 적이 많았다. 저녁에 재봉틀로 뚝딱 만들어낸 텐트만 한 크기의 어머니의 꽃무늬 가운에, 신발 끈 위로 툭 불거져 나온 살에,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샌드위치, 소시지롤, 록 케이크 따위를 종종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할 때가 그랬다. 그런 걸 보면 몸에도 영향이 있었다—사지에 열감이 느껴지며 힘이 쭉 빠지는 느낌, 이마 뒤에 뭔가 엉기는 느낌. 그는 버스나 기차에서, 그 어떤 공적인 모임에서도 고집스럽게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앉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그와 그녀를 연결 지을까 봐서였다.- P166
에이바는 주전자를 수도꼭지 아래에 대보지만 물줄기가 옆으로 발사돼 손목을 적시자 움찔한다. 뭔가 잘못됐다. 이 집, 평생을 알고 지낸 이 집이 그녀에게 농간을 부리고 있다. 만 번도 넘게 지나다닌 출입구는 갑자기 좁아진 것 같다. 지날 때 날카로운 모서리에 팔꿈치가 걸린다. 아기일 때 누워 있고, 아장아장 걷던 러그는 그녀를 넘어뜨리기로 공모라도 했는지 신발이 자꾸 걸린다. 선반은 낮아져 관자놀이에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 전등 스위치는 창문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다.- P170
그는 둘의 말소리를 능가하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들어봐요. 오늘 계획이 뭐예요?"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를 돌아보고, 그는 놀랍도록 비슷한 둘의 눈이 점점 커지는 걸 보며 느낀다. 둘 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둘은 그저 둘 사이의 공기를 메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구나, 헤어브러시 논쟁은 단지 그런 긴장감을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구나.- P172
팔짱을 끼고 집 안 층계참을 반복해서 거닐며 마음에 가득 차고 넘치는 장면을 어렵게 견디는 날들이 있다. 비 오는 어둑어둑한 저녁 피카딜리선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비에 맞아 반짝이는 우산, 걸어서 10분 거리인 그녀의 예전 아파트와 어머니의 집, 안개 낀 날의 하이베리 필드, 프림로즈 힐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광경. 향수병. 그녀는 향수병이 정말 실제로 누군가를 그리움으로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저녁 즈음이 되면, 그녀는 항상 준비돼 있다. 슬픔을 뒤로 감춘다. 마치 숨겨야 하는 추한 모습이라도 되는 양.- P175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게 할 거고, 되돌아가지 않을 거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다. 누구에게도 다시 패배했다고 보이지 않을 거다. 간호 학위에 실패하고 아이가 없고 남편이 떠난 모니카. 모니카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작정이다. 흔들리는 지붕, 밤이면 삐걱대는 굽도리널, 좀먹은 가구, 적대적인 이웃이 있는 이 집에 살 것이다. 여기 살 것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P175
마이클 프랜시스에게 묻는다면, 로버트의 퇴직은 그의 인생에 일어난 일 중 최악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버지의 직장은 아버지 인생에 변함없는 일과,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유, 하루를 보낼 장소, 시간을 채울 업무, 저녁이면 돌아오기 위해 출발할 장소를 제공했다. 그것이 없는 아버지는 부두에 묶어놓지 않은 보트, 목표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며 부딪히는 보트와 같다.- P180
그는 가늘고 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오소리털 붓끝으로 턱을 문지른다. 아버지 빼기 어머니는 풀 수 없는 방정식이다. 아버지의 침묵은 어머니의 떠들썩함으로 발효되고, 아버지의 질서와 냉정함은 어머니의 혼돈과 극적인 속성 때문에 더욱 강조된다. 그들 중 누구도 그레타에 의해 활력을 얻지 못한 로버트를 보지 못했다. 마이클 프랜시스는 그레타를 만나기 전 몇 년 간의 아버지 모습을 결코 상상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머니 없이 아버지는 삶을 어떻게 꾸려나갔을까?- P183
샌드위치를 하나 입안으로 던져 넣었는데, 어쩐지 놓치고 만다. 바닥에 떨어진 샌드위치가 신발 발가락 부분에 비스듬히 맞고 퉁겨진 뒤 쓰레기통 주변 어딘가로 사라진다.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처럼 꼭 들어맞는 것 같다. 지금 그가 처한 삶의 현실과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자신을 혐오하는 것 같은 아내를 둔 남자, 가족이 위기 속에서 산산조각 난 남자, 열기와 가뭄에, 물 부족에 포위돼버린 남자, 아버지가 신만이 아는 어딘가로 도망쳐버린 남자.- P196
애정의 물결이 에이바 안에 차오른다(본능적이고 즉각적이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느낀다. […] 결국 모니카일 뿐이다. 에이바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모니카다. 평생 알아온 모니카, 언니다. 뉴욕에서 내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온 파멸의 악령이 아니다. 그냥 모니카다. 에이바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냐면 그게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몇 년 만에 친언니를 만났을 때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렇게 안아주고 나면 예전에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든 그런 것들은 싹 사라지고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전에 마이클 프랜시스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P198
에이바는 옆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의 접시를 내려다본다. 주변에 우박처럼 쏟아진 부스러기, 우각호 모양으로 말라붙은 차를 보며 시차로 인한 피로가 배고픔과 메스꺼움 사이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나누고 있음을 느낀다. 모두를 이해해야겠다는, 모두의 위치를 파악해야겠다는, 기억해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다른 누군가가 사라지기로 결심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에이바는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확인한다. 마이클 프랜시스는 여전히 주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고, 어머니와 모니카는 복도에 있다. 게이브는 저 멀리 대서양 건너편에 있다.- P200
에이바는 바로 앞 카펫에 있는 그들의 발을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이클 프랜시스의 맨발, 어머니의 슬리퍼, 끈에서 빨간
색 헝겊 조각이 피어오르는 모니카의 버건디색 샌들. 에이바는 대신 자신의 손을 본다. 손은 여전히 단어로 뒤덮여 있다. 흐릿해지는 검은 잉크, 글자는 앞으로 뒤로 흘러간다.- P201
그녀의 언니, 모니카는 그녀를 피했고 마치 그녀가 거기 없는 것처럼 그녀를 통과하거나 지나쳐 봤다. 그건 모든 걸 부인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건, 우린 방을 같이 쓴 적 없다, 나는 길을 건너려고 네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난간에서 상처를 입었을 때 네 머리에 붕대를 감아준 건 내가 아니었다, 넌 내가 입다 작아진 옷을 입고 자라지 않았다, 내가 신열로 몹시 아파 누워 있을 때 내 입에 차를 떠먹여준 건 네가 아니다, 넌 수년 동안 같은 침대에서 내 옆에 누워 자지 않았다, 너에게 눈썹 뽑는 법, 신발 버클을 매는 법, 스웨터 손세탁 법을 알려준 건 내가 아니다,라는 걸 의미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부조리함과 아픔에 에이바는 당황했다. 그 모든 시간을 보낸 후에도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모니카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치 새로 생긴 멍처럼 욱신거리고 아프다.- P211
방을 함께 썼던 사람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서로 스미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가까이에서 밤새도록 같이 잠을 자면, 서로의 공기로 숨을 쉬고, 마치 꿈인 것처럼 무의식이 얽혀 마음의 회로가 서로의 마음 가까이에서 흐르고, 그렇게 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정보가 교환된다.- P215
에이바는 하늘을 흘끗 올려다보지만 이내 눈을 가려버린다. 태양이 지붕과 나무 위에서 정점에 이르러 있다. 정오 또는 그쯤 이 분명하다. 앞에 펼쳐진 광경, 그러니까 자동차, 버스, 가게, 유아차를 끄는 젊은 여자가 모두 어른거리고 굴절된다. 태양 빛이 모든 것에 침투해 가게 쇼윈도에서, 자동차 범퍼에서, 유아차 바퀴에서 나온 빛이 망막을 헤집고 들어온다.- P220
에이바는 그에게 뭘 말했는데, 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레타는 선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신발이 담긴 모자 상자에서 가만히 손을 뗀다. 자신이 들은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정말 에이바가, 그에게 뭘 말했는데, 라고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 연못에 던져진 돌덩이처럼 그레타의 마음속으로 가라앉는다. 항상 반쯤 의심하던 것이 갑자기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렌즈가 안개 낀 장면에 왜곡되어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모든 게 선명히 보인다. 그레타는 손을 옷장의 나뭇결을 따라 쓸어내린다. 꼭대기에 홀로 놓인 좀약을 제거한다.- P256
그레타는 로버트의 의자에 앉는다. 뒤에 걸린 트위드 재킷의 딱딱한 칼라가 등에 n 모양으로 압박을 가해온다. 처음에는 막연히, 그러다 분명히 제멋대로 비죽비죽 강렬한 충동이 든다. 남편이 보고 싶고, 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말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의 곁에 앉아 그도 지금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거다. 딸들, 사랑하는 자식들 사이에 끔찍하게 꼬인 관계,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그레타는 그곳에 앉아 고립감을, 그의 부재를 느낀다.- P258
그레타는 항상 모니카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다. 처음 그 아이를 본 순간부터 죽 그랬다. 다른 두 아이와는 이러지 않았다. 모니카만 그랬다. 그녀는 출산으로 인한 비몽사몽에서 돌아오면서,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떠나가라 우는 아이를 곁에 두고 혼자 깨어나면서, 모니카가 어쩌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테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지나치게 많이 보았고, 또 그 아이가 목격한 장면을 절대 잊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P263
아버지는 모니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걸어 나가버렸다. 이 모든 걸 남겨둔 채. 히스테릭한 그레타를 진정시키고, 홍수처럼 밀려드는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맞게 하고서. 아버지는 분명 모니카가 이 문제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터다. 신경이나 썼을까? 아니,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모니카가 모든 걸 팽개치고 집에 와 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보다 더 이기적이고 무심한 행동은 없다.- P268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