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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오후 시간, 나는 내 방에서 우리 가족의 느리고 꾸준한 종말의 과정을 반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구름이, 정확히 우리집만한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우리에게 드리운 것 같았고, 우리 미래를 엮어낼 복잡한 요소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 같았다. […] 삶은 계속되지만 달라졌다. 더 물러졌고, 더 지루해졌다. 즐거움은 덜해졌고 고통은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한없어진 듯하다.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를 해야 한다. 그날 오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나는 누나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그 구렁텅이의 가장자리에서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 빠질 마음을 먹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로 인해 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구렁.- P240
나는 누나에게 팔을 둘렀고, 내게 온몸을 맡긴 누나의 무게감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누나가 내게 안긴 것은 아주 오래된, 몇 년 만의 일인 것 같았다. 나는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오자, 누나가 내 가슴께로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P245
나는 눈을 감는다. 조금 후면 우리는, 매일 밤 그러하듯이, 우리의 조그만 매트리스 위에서 함께 잠이 들 것이다. 창문 밖 종려나무들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 P249
열세 살짜리 남자아이가 그런 것을 구분해낼 수 있을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은 그저 어느 늦가을 오후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도 확신은 할 수 없다. 나는 그때껏 어머니의 성생활에서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분명 없었다. 어머니와 다른 여자들의 관계를 놓고 의혹을 품어본 적도 분명 없었다. 그날 이전에는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헌신적인 아내였고 다정한 어머니였다. 그건 내가 알았다.- P257
결국 나는 나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최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수도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일 수도 있었다. 누구나 약해지는 때가 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혼란에 빠지는 때가 있는 법이야.- P260
나는 섬 집에 혼자 앉아 있을 아버지 생각을 했고, 어머니는 간혹 손을 뻗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주곤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걱정 마. 네게는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아."- P264
나는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만 해도 해가 환하고 산들바람이 불고 가을인데도 때아니게 따뜻하더니, 늦은 오후, 초대한 손님들—벤틀리 씨 부부와 올리앤더 씨 부부—이 우리집에 도착한 즈음에는, 살랑살랑 불던 산들바람이 차가워졌고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잿빛으로 변했다. 켈리 누나와 남자친구인 채드 윈터스는 뒤뜰에 있는 테니스 장비 보관실 뒤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돌려 피우던 마리화나의 타들어가던 빛을, 옅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오렌지색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던 그 빛을 기억한다.- P266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고 잔디밭 너머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개 위니는 서늘하고 어두운 그늘에 누워, 어머니가 던져준 뼈다귀들 가운데 하나를 씹으며, 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는 아무도 위니에게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녀석은 한창때의 아버지를 상기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녀석은 어디를 가든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개, 거실에 있는 아버지의자 옆에 앉아 있던 개, 매일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맞이하던 개였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위니 녀석 역시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녀석은 더이상 아버지와 있을 때처럼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P270
그렇지만 나는,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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