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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린이 대답했다. "그래. 나는 문득 우리가 모든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에는 자연도태의 법칙이 있잖아. 알리기 싫은 것들이 있으면 삶은 모종의 방식으로 그걸 감춰버리지. 그럴 때는 아예 몰라도 되는 거야. 어차피 세상에는 모르는 일이 더 많고 아는 일은 적으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힘들게 알아낸 것들이 당시의 진실이라고 보이지도 않아."
룽중융이 말했다. "네 말은 몰랐던 일을 굳이 들쑤셔서 알 필요가 있느냐는 거지?"
"사실 여기 올 때만 해도 생각이 확실했던 건 아니야. 그런데 오늘 밤 갑자기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 특히 루씨 가문 도련님의 ‘영원히‘ 결심을 들었을 때. 그들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후손에게 절대 알리지 않겠다잖아. 모든 걸 시간의 풍화에 맡기겠다는 철학을 가진 듯했어. 그렇다면 나는 몰랐던 것을 왜 굳이 알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원래 아무 관련이 없던 이곳과 왜 굳이 관계를 맺으려는 걸까 싶기도 하고."- P399
"네 말은 어머니가 알려주신 것들은 그저 단편적인 단어에 불과하고, 그것들을 그냥 조각난 상태로 두는 게 더 낫겠다는 거지? 그 자잘한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걸 생각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정말로 그것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찾아내 원형을 복원하면, 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네가 맞춰낸 원형은 진정한 원형이 아닐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P400
칭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평온하고 평범해 보이는 삶도 뜯어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아, 나는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역사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평범한 사람은 대항하지 않는 법이지.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나는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잊는 법을 배우고 싶어.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이니 시간을 따라갈래."
룽중융이 응했다. "평범한 사람은 대항하지 않는 법이라고, 그래! 그렇다면 그러자. 이제 내려놓고 더 생각하지 마. 더 묻지도 말고. 나는 이해할 수 있어."- P402
반면 딩쯔타오는 무척 담담했다. 시아버지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만 건사할 수 있어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엄청난 불행으로 끝났다. 그는 상황을 잘못 읽어서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구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증오는 서로 아는 집안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부자를 증오했다. 부자의 재산을 나누는 게 모든 가난한 사람이 원했던 일이었다.- P409
그때 딩쯔타오는 모란 이불을 침대에 깔던 순간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깜짝 놀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신방 전체가 그 이불 때문에 환해지는 듯했다.
원래 내 인생에도 그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딩쯔타오는 생각했다.- P414
끝없는 어둠 속으로 야생화가 전부 숨었다. 자연의 모든 것이 검은 밤과 한몸을 이루고 있었다. 앞쪽의 등불만 검은 장막 위에서 명멸하는 유령처럼 불규칙적으로 흔들흔들 빛날 뿐이었다.- P421
칭린이 말했다. "장원의 삶이 안락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여자와 아이들만 그런 생활을 누렸을 뿐 주인은 늘 긴장하고 초조해했던 것 같아. 이 망루와 포구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룽중융이 동의했다. "여기 주인은 의지가 강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도 잘 챙겼던 것 같아. 사실 망루가 초소와 포루를 합친 건데, 거기에 뾰족한 지붕을 가진 정자까지 올렸잖아. 그건 주인이 낭만적이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곳은 화포를 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경치를 감상하며 시를 읊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지." 그런 다음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망루의 매력은 전쟁과 평화를 한데 품었다는 점 같아."-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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