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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문 오른쪽 담장의 대나무로 향했다. 대나무에서 새로 올라온 가지와 잎이 무척 파랬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창 앞의 대나무, 맑고 푸름이 홀로 기이하구나‘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어떤 남자의 목소리로, 얼굴마저 아른아른 떠오르는 듯했다. 딩쯔타오가 자기도 모르게 "사조로구나" 하고 말했다.- P52
모든 것이 짙은 구름에 싸여 새하얗게 변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끊임없이 움켜쥐었지만 무의미한 헛손질에 그칠 뿐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끝없이 새하얀 대지가 정말로 깨끗하구나!‘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홍루몽』에 나오는 ‘끝없이 새하얀‘이라는 표현은 이런 광경을 두고 한 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이상 몸부림치지 않고 어디까지 가는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느낌만 남았다.
그녀는 눈부신 구름 위에서 하염없이 떨어졌다. 눈앞의 새하얀색이 회색으로 변하고 계속 진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새까매졌다. 그 어둠은 밑도 끝도 없었다.- P63
누구도 그녀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게 어둠의 심연이며 자신이 이미 그 속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P64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오랫 동안 알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당연히 류진위안도 잘 알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갈 곳이었다. 낯익은 사람들이 먼저 가 있는 것도 좋았다. 그가 갔을 때 훨씬 지내기 좋을 테니 슬프지 않았다. 다만 고정적 기준이든 가변적 기준이든, 과거의 기준이 조금씩 소실되거나 변형될 때면 그의 머릿속에서 매듭지어진 줄이 누군가에 의해 뭉텅뭉텅 잘리는 듯했다. 기억 속에 저장되었던 것들이 그 가위의 움직임에 따라 줄기차게 제거되었다. 그건 사람의 속성이었다. 오래된 것들을 떠올리지 않으면 아주 많은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화되었다. 예전에 그의 부하였던 우자밍은 망각이 인간의 몸에서 제일 좋은 본능이라고 말하곤 했다.- P69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에 휩싸였다.
마음이 너무 쓸쓸한 탓 같았다.- P72
그에게는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시간과 잘 지내는 것만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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