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uroo4님의 서재

돌연 에드메는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의자로 풀썩 떨어지며 온몸을 웅크리고는 열성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전신을 들썩이는 키들거림이나 단속적인 웃음과 흡사하리만치 맹렬하게. 그녀의 우아한 몸이 휘더니 슬픔과 사랑의 질투와 분노와 자각하지 못한 굴종으로, 그러면서도 한창 투쟁 중인 투사처럼, 파도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는 사람처럼 위로 솟아오르는가 하면 들썩거렸다. 그녀는 새롭고 자연적이고 씁쓸한 물질 속에 푹 잠긴 기분이었다.- P108
생기 없는 눈빛의 이 젊은 남자는 식객이라는 자신의 어렵고 궂은 직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바, 호기심을 물리치고서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했다. 하지만 얼근히 취기가 돈 셰리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레아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입된 올바른 부부관에 사로잡혀 상식적인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결혼에 대해 허세를 떨면서 레아의 미덕을 인정했고, 젊은 아내의 순종적인 나긋나긋함을 찬양하면서 그 틈을 타서 레아의 단호한 성격을 비판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지독한 여자야, 단언컨대 자기 생각이 너무 확고하다니까!" 그의 속내 이야기는 더 깊이 들어갔고 급기야 레아는 냉혹하고 고집스런 여자가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떠들면서 박해받은 연인의 고충을 암시하는 너절한 말들 뒤에 숨어, 위험 없이 레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은밀한 행복을 누렸다. 그는 조금 더 레아의 평판을 해치면서 속으로는 고이 간직한 그녀와의 추억을 기렸다. 여섯 달 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그 다정하고 쉬운 이름을 마음껏 발음하면서 레아의 모든 자애로운 모습을 떠올렸다. 그에게 몸을 기울이는 모습, 복구할 수 없는 아름답고 선명하고 굵은 두세 줄의 주름, 그녀는 그를 위해 물러났으나 - 맙소사! - 지독히도 존재했다···.- P121
부리기 좋으면서도 거만한 장신의 젊은이는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지폐를 구겨 넣으며 출발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셰리는 건드리지도 않은 오렌지주스를 멀거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운명이라도 쓰인 듯이.- P123
잠들었던 이가 일어나 앉았다. 그의 흐린 하늘색 눈동자가 친구에게서 멎었다. 그는 셰리를 더 오래 관찰하기 위해 잠이 덜 깨 어리바리한 척했다. 파란색으로 차려입은 셰리는 비장하고 근사했으며 안색은 능숙하게 칠한 벨벳 같은 파우더 아래에서 창백했다. 데스몬드는 자신의 멋부린 추함과 비교되는 셰리의 아름다움에 고통스러웠다. 그는 일부러 길게 하품을 하면서 생각했다. ‘또 무슨 일일까? 이 머저리는 어제보다 더 잘생겨졌군. 특히 저 속눈썹, 저 속눈썹은 진짜···‘ 그는 셰리의 힘차고 반드러운 속눈썹을, 푸르도록 하얀 흰 자위와 짙은 색 눈동자에 드리우는 그 속눈썹의 음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또한 거만하게 올라간 아치형 입술이 오늘 아침에는 쾌락에 갈급한 듯 촉촉하고, 또렷하고, 달떠서 미세하게 헐떡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P134
그는 레아 방에 있는 것과 같이 두 창문 사이에 서있고 정확히 그의 신장 높이인 세로로 긴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휘파람을 불었다. 조금 전엔 환한 분홍색 벽을 배경으로 묵직한 금색 테에 끼워져 있던 또 다른 거울 속에서 나신이거나, 헐렁한 비단 잠옷으로 몸을 감싼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더랬다. 사랑받고 행복하고 애지중지되던 잘생긴 젊은이가 연인의 목걸이며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호사스런 모습을··· ‘혹시 아까 레아의 거울에 젊은 남자가 비쳤었던가?···‘ 언뜻 생각이 미치자 극도의 흥분이 몸속을 훑고 지나갔다.- P135
그는 분노 없이 놀라워하며 힘겹게 상상해낸 말과 이미지들로 자신의 고통을 후버팠다. 그는 레아의 집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아침나절의 노닥거림, 쾌락이 길어졌던 완전무결한 침묵 속에서의 오후, 차가운 방의 따뜻한 침대 속에서 빠져들던 달콤한 겨울 잠··· 그의 눈엔 여전히 레아의 팔에서, 레아의 방 커튼 뒤에서 타오르는 오후의 체리 빛 태양 속에서, 단 한 명의 연인 만이 보였다. 바로 셰리 자신.- P136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