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괜찮아 보이려고 무리할 때가 있다. 어린이는 더 자주 그런다. 얼마큼 감당할 수 있는지 자기도 잘 모르니까. 중학교 입학은 커다란 사건이다. 어엿한 새 출발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때와 비교하면 어린이는 좀 외로울 것 같다. 내 눈에는 어린이날 선물을 못 받는 것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지는 ‘어린이‘인데. 잘하라는 말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 초등학교 때보다는 어렵겠지만, 그때와는 다른 재미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하는 위로의 말이 아니라, 그게 바로 진짜 내 생각이다.- P139
어린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아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을 뜻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 만족스러운 것, 언젠가 해보고 싶은 것이 어린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만 들어지는 게 아닌가. 점점 많아지는 게 아닌가.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원고지를 채우는 어린이들 옆에서 나도 아름다움의 목록을 적어보았다. 감은사지 삼층 석탑, 오리온 별자리, 새하얀 구름, 사이다 병뚜껑 따는 소리, 수평선, 개의 모든 것, 일곱 살 어린이와 하는 악수, 어린이 이마에 맺힌 땀, 옥수수 삶는 냄새, 부처님 오신 날 무렵 거리의 연등, 반짝이는 모든 것, 작은 털장갑, 편의점 건너편 나무 그늘, 가을이 왔다 싶은 아침, 옛날 동시, 『릴케의 로댕』, 벚나무 낙엽이 깔린 길, 봄에 나뭇가지에 나는 새잎, 색종이, 코뿔소, 잡채, 오이지, 잠옷, 비누, 보온병, 양산, 국자, 전시회, 지도, 국어사전······.- P145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 정치가 책을 미워하고 사회가 책을 소외시키고 경제가 책을 의심해도, 독자는 계속 생겨난다. 브레히트는 "암울한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 것인가? 그래도 노래 부를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읽을 것이다. 우리 세계에 대한 책을.- P151
"저는 어린이가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력은 적지만 친근한 선생님, 경력이 적어서 엄격한 선생님, 연륜이 있어서 너그러운 선생님, 연륜이 있고 엄격한 선생님. 학년에 따라 학교 사정에 따라 여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기회니까요. 조금은 냉정한 선생님, 노래를 못하는 선생님, 덤벙대는 선생님, 아픈 선생님, 피부색이 다르거나 장애가 있거나, 둘 다인 선생님도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을 통해 삶의 여러 모습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선생님은 날마다 ‘가까이에서 보는‘ 의미 있는 어른이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위상은 어쩌다 마주친 (허세에 찬) 작가와는 전혀 다르고, 소방관이나 과학자와도 다르다. 그러니 선생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이들과 사회를 위해서 그분들에게 안정과 인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그게 잘되고 있는 걸까?- P161
물론 괴팍한 선생님도, 신경쇠약이 의심되는 선생님도, 우리 눈에도 무기력해 보이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건, 선생님들의 어떤 말과 행동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생님들한테 이런 말씀을 들었다.
"교복을 갖추어 입고, 교표를 꼭 달아라. 그건 너희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우리 학교가 보호하는 아이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고등학교는 시간을 버는 곳이다. 대학을 안 가더라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것저것 해봐라. 학교 지붕 아래 있을 때, 선생님들이 도와줄 수 있을 때 해봐라."
가톨릭 계열의 학교여서 ‘종교‘ 수업도 일정 기간 들었다. 그때 수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신앙이 있다. 너희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누구든 신념은 있어야 한다."- P167
그런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사랑받는 게 무언지 배웠다. 선생님들이 나만 꼭 집어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랑받는 아이 중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은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가정의 그늘을, 폭력을, 냉담 함을, 긴장과 불안을 잊을 수 있던 아이들이.- P168
학교는 공교육을 실행하는 기관이다. 이때의 ‘공公‘은 공평하다는 뜻의 공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평하게 배우고 이해받고 보호받는 곳이다. 입시나 진로 준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바깥의 집‘이다. 누군가의 자녀, 어느 집의 몇째가 아니라 이름을 가지고 한 명의 시민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학교에서 아이들은 사적인 생활을 가꾸어나간다. 『공공성]"이라는 책에서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의 소멸을 요구하지 않는다"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공과 사가 얼마나 얽혀 있는 관념인지 생각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생각만 했지, 어떻게 합쳐지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