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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oo4님의 서재

동물원에서 길을 건너면 브롱크스강에 둑을 대 생긴 작은 호수와 폭포가 나온다. […] 테라스 끝에는 반원 모양으로 벤치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벤치는 매년 연두색 페인트로 덧칠했다. 벤치에 앉아 어떤 각도에서 보면 호수는 끝이 안 보이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 그 호수에 못해도 백 번은 갔기에 어떤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얼마나 작고 막혀 있는지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벤치에 앉아 있을 때마다 물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 굽이진 곳 끝까지 가면 호수에 갑자기 신비로운 수로가 나타나고 내가 가본 적 없는 세상으로 통할 거야. 나는 벤치에 앉아 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전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벤치는 원래 몽상가들이 앉는 곳이라고, 사람들은 꿈을 꾸기 위해 이 호숫가 벤치에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P144
73번가에서 렉싱턴애비뉴로 꺾어 휘트니미술관으로 향했는데 최근에 열린 특별 기획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근처 갤러리에 걸린 독일 표현주의 그림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갤러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이는 벽에 에밀 놀데의 커다란 수채화 두 점이 걸려 있었다. 그 유명한 꽃 그림이었다. 나는 놀데의 꽃 그림을 전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이건 난생처음 보는 그림들 같았다. 발산하듯 넓은 붓질로 두껍게 칠한 강렬한 색채의 꽃에 어떤 의도가 있음을 그제야 느닷없이 깨달았다. 놀데의 의도는 꽃이 선사한 타오르는 열정을 진지한 인내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주제에 명확하고 완고하게 천착하는 예술가가 있었다. 그림의 의미가 그제야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품에 힘을 주는 건 집중력이구나. 내 안의 공간이 넓어진다. 내 안의 직사각형 공간 속으로 빛과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사고가 명징해지고 언어가 풍부해지고 지성이 작동을 개시한다. 외로움, 불안, 자기연민으로 가득했던 내면의 공간이 놀데의 꽃을 보며 점점 확장된다.- P157
다시 한번 내 안의 공간이 기대치 않게 확장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공간이란 뭘까. 내 이마 한복판에서 시작돼 가랑이에서 끝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내 몸만큼 넓기도 하고 화살구멍만큼 좁아지기도 한다.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는 날이면,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날이면 감사하게도 이 공간은 무한히, 아름다운 날씨처럼 확장된다. 그러나 불안과 자기연민이 치고 들어오는 날이면 쪼그라든다. 얼마나 삽시간에 쪼그라드는지! 이 공간이 넓어져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나는 그 안의 공기를 맛보고 또 느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호흡한다. 마음은 평화롭고 기대감에 차서 사는 게 즐겁고 어떤 영향력이나 위협에서도 놓여난다.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지니. 나는 안전하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과의 전쟁에서 지면 경계선은 좁아지고 공기는 오염되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사방이 수증기와 안개뿐이다.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P159
나는 열일곱이었고 엄마는 쉰이었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감히 엄마와 대적할 만한 인물로 여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엄마는 타고나길 게임의 승자여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선이 그어졌고 우린 단 한 번도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항상 서로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싸움은 폭풍처럼 집 안을 뒤흔들고 벽에 칠해진 페인트에 금이 가게 하고, 바닥의 리놀륨 장판을 찢어지게 하고 창 유리를 덜컹이게 했다. 우리에겐 단 한 번도 휴전이 없었고, 대재앙이 닥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P168
한번은 내가 당시 사귀던 남자애랑 잤다고 단단히 확신한 엄마가 내 팔을 너무 아파서 눈이 엇뜨일 정도로 세게 꼬집었다. "너 그 남자 맛봤구나, 그런 거지?" 힐난과 낭패감이 서린 까칠하고 낮은 목소리다. 엄마가 삽입 성교를 비유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었다. "너 그 남자 맛봤지? 그랬지?" 이 문장은 들을 때마다 충격적이었다. 이 말은 나의 신경종말을 자극했다. 억압의 멜로드라마. 악의에 찬 수동성, 힘의 부재에 대한 분노, 이 모든 것이 저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고,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면 우리는 이름은 없지만 떡하니 존재하는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마주했다.- P1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여자의 삶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절대 놓아주지 않고 매년 다달이, 날마다 우리를 더 깊은 갈등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자기 방식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서로를 분리시키면서 연민도 함께 거둔다. 남몰래 다른 사람들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특성을 수집하기 시작하고 그들과 자신을 더욱 열심히 분리하면서 마치 나와 너의 이 차이가 구원이라도 되는 줄로 착각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 저러니 다행이야‘ 타인을 보며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혼잣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렇게 판단을 한댔자 삶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환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단단한 껍질 아래서 노여움에 차 조용히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이다. 이 억제되지 못한 노여움이 우리를 고갈시키고 죽이기도 한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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