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에 나눈 어떤 대화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도 내 기억엔 전혀 없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에게 감정 과잉은 자연스러웠지만 다정한 위로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벙어리로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엄마였다. 엄마의 비통함이 아빠의 죽음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다른 이들은 사건의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관객으로 위축시켰다. 엄마는 온몸으로 우리가 절대 위로할 수 없고 살아낼 수도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못해도 영원히 발전이나 성장을 저해할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모든 드라마의 주연은 엄마였고 남은 사람들은 뒤에서 발을 끌고 돌아다니거나 말도 눈물도 없이 불행이라는 질척한 진흙탕 속에서 어기적거리는 단역이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극적인 자포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엄마의 애도만 지켜보아야 하는 먼 문상객이 되어버렸다. 침울한 집 안을 배회하는 동안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찬 이는 오직 엄마—지금 이 난리통 속에서 아빠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나?—이 사람을 지켜보아야 하고 돌봐야 한다. 사력을 다한 엄마의 비탄은 다른 평범한 애도를 닦아세웠다. 우리 집의 비극은 며칠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P101
그렇다고 해도 누구 한 사람 나를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부엌에서도 거실에서도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아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진정시켜줄 만한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과 부엌 사이엔 질식과 생존만 한 간극이 있었다. 거실은 칙칙하고 음울하고 단색이며 무언가 갑갑하게 엉겨 있는, 공기가 희박한 곳이었다. 부엌에 가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내뱉을 수 있었고 그 공기는 밖으로 나가거나 밑으로 깔렸다. 부엌엔 목소리와 말투가 있었고 분위기는 나빠졌다가 좋아지기도 했으며, 기분은 가라앉기도 나아지기도 했다. 움직임이 있고 공간이 있고 빛과 공기가 있었다. 적어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살 수 있었다.- P106
남편을 여읜 처지는 엄마를 더 고귀한 인간 존재로 승격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에서 회복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부엌일하던 시절에는 가져본 적 없던 당신의 타고난 진지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 30년을 한결같이 바로 그 진지함에 헌신했다. 지치지도 않았고 지루해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진지함이 가져다준 낙을 유지할 새로운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아냈고 영락없이 그걸 당신 것으로 만들었다.- P117
아빠를 애도하는 일은 엄마의 직분, 엄마의 정체성, 엄마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몇 년 후에 나는 우리 모두가 깊이 몸담었던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여러 국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배관공 제빵사 재봉사 들이 본인을 사상가 시인 학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과 다른 사람들,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당신의 과부 처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여긴 건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볼 때 당신은 남편을 잃었기에 더 차원 높은 인간, 정신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었고 감정은 더욱 심오해졌으며 수사는 더 풍부해졌다. 아빠의 죽음은 의식과 신조를 제공하는 하나의 종교였다. 일생에 단 하나뿐이던 사랑은 정통파 유대교와도 같았고 엄마는 탈무드를 기록하듯 그 안에서 율법과 유산을 찾아냈다.- P118
내가 숨 쉬는 공기는 엄마의 절망 안에 푹 담겨 있다 나오면서 진해지고 의기양양해지며 자못 흥미롭고도 위험한 것이 되었다. 엄마의 고통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 내가 거주하는 국가, 내가 바짝 엎드려 따라야 하는 법과 규칙이 되었다. 나를 지휘하고 통솔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엄마에게서 벗어나기를 갈구했지만 엄마가 방에 있을 때면 한시도 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엄마의 퇴근을 두려워하면서도 엄마가 귀가하면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의 존재가 내뿜는 불안은 내 허파를 부풀어 오르게 했다(물리적으로 심장이 조여들었고 가끔은 쇠갈고리가 골을 파고드는 느낌까지 들었다). 욕실 문을 잠그고 혼자 숨어서 엄마를 대신해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금요일이면 꼬박 이틀간 이어질 게 뻔한 눈물과 한숨, 불씨가 꺼져도 식식거리며 새어 나오는 연기 같은 엄마의 우울증이 공기 중에 내뿜는 묘한 책망의 기운에 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죄책감 속에서 일어나 죄책감 속에서 잠들었고 주말이면 죄책감이 점점 더 쌓여가다 얕은 열병에 걸린 상태가 되었다.- P119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 엄마의 영향력은 마치 피부조직의 막처럼 내 콧구멍에, 내 눈꺼풀에, 내 입술에 들러붙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엄마를 내 안에 들였다. 나는 엄마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시고 취했고 풍요로우면서도 밀실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엄마의 존재감, 엄마라는 실체, 숨통을 틀어쥐는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반도 못 헤아렸다.-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