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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세대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여자들만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 살던 남자는 단 한 명도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었고 아빠였고 아들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떠올릴 때마다 여자들만 기억난다. 그곳 여자들 모두가 드러커 아줌마처럼 상스럽거나 우리 엄마처럼 외고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법이 없었고 넘어온 삶의 고개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행동만 보면 세상사를 다 꿰고 있는 듯했다.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하고, 시어도어 드라이저(19세기 미국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연주의 소설가로 이민자와 빈곤층의 삶에 주목했다)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잠시 평화로워 보이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충격적이고 야만스러운 사건들이 터졌고 그 와중에 두세 명의 삶은 상처로 얼룩지고(어쩌면 몰락해버리고) 다시금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또다시 울적한 고요함, 관능만 남은 무기력, 부정이 만들어내는 평정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나라는 여자애는 그들 한가운데서 자라고 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얼굴을 덮은 천의 클로로포름을 빨아들이듯 나는 그 여자들을 빨아들였다. 무려 30년이 흐른 후에야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P6
세사는 참 예쁘장하고 젊은 새댁이었어. 결혼한 지 2년도 안 되었다고 했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럭저럭 착실한 남자였거든. 내가 아는 건, 남편을 안 사랑했고 매일 엉덩이까지 찰랑찰랑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 눈에 확 띄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머릴 싹둑 자르고 나타난 거야. 세련된 도시 여자가 되고 싶었나 봐. 남편은 아무 말 없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집에 오더니 깎은 머리를 보고 냅다 뺨을 갈겨버린 거야. 너무 아프고 어안이 벙벙해서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보일 정도였대. 그러곤 사위를 시켜 한 달 동안 집에 가둬버리라고 했다나. 세사는 비상계단을 타고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 우리 현관으로 나갔지 뭐. 한 달 동안 매일매일 말이야. 한번은 우리 집 부엌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어. ‘세사, 친정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해. 우린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자유가 있다고.‘ 세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그러더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하라고요?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양반이에요.‘- P9
우리 가족은 1년간 이탈리아 골목에서 살았다. 어린 오빠와 나는 그 동네 학교에서 유일한 유대인이었다. 우린 참으로 비참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저 비참하기만 했다. 유대인 동네로 이사하고 오빠는 한시름 놓았는데 매일 방과 후 자기를 유대인 범생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얻어맞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의 삶을 이루는 기본 형식이나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탈리아나 아일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 같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외부자스러움‘은 우리의 개성과 흥미를 북돋아주었고, 우리를 어떤 식으로건 정의했기에, 겉으로는 두려워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짜릿해하기도 했다.- P17
우리 건물에는 대체로 유대인만 살았지만 1층에 아일랜드 가족, 3층엔 러시아 사람들이 살았고 관리인은 폴란드인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모두 키가 멀대처럼 크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건물에 드나들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모두 삐쩍 마르고 금발에 파란 눈을 갖고 있었으며 입술이 얇았고 얼굴이 갸름했다. 그들 또한 우리 사이에선 그림자와 같았다. 관리인과 그의 아내도 말수가 적었다. 누구에게도 먼저 말 거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이건 다수 안에서 소수가 살아남는 방식일 것이다. 소수자는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 P17
이 안뜰을 공유하는 건물 전체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은 하루 종일 갖가지 일로 서로를 불러댔다. ("하비 언제 병원 데리고 갈 거야?" "집에 설탕 있어? 내가 매릴린 보낼게" "10분 후에 집 앞에서 만나.) 어찌나 인정과 활기가 넘쳤던지! 신선한 공기와 그림자 한 점 없는 쨍한 햇살 속에서 여자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의 목소리는 햇볕에서 바짝 마르는 빨래 냄새와 섞이며 이 열린 공간의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부엌 창문에 기대 서서 지금까지도 입에서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안뜰을 바라보곤 했다. 그건 연하고 밝은 초록의 맛이었다.- P23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P25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 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 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P26
커너 아줌마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욕구에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건 인간의 감정이었고 당신의 예술적 도구인 음악, 그림, 문학을 통해 그 순수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을 느낄 줄 아는 문화적인 사람들과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감정을 고양시키면 큰 재산이 되기도 하고 그게 싹 사라져버리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생이 되기도 하는 거야.-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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