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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차에서 도시로 돌아가면서 여기를 걷고 있다. 해가 지고 있는데 나는 동쪽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이중의 여정을 밟는다. 하나의 여정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여정이다. 마주 오는 사람은 초록이 물들어가는 인적 없는 지역을 걸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데 이 평화롭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는 자기 앞으로 늘어진 그림자를 본다.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땅 위로 움직인다. 그림자의 다리가 창백하고 길다. 나는 인적 없는 곳을 가로지른다. 그림자가 갈색 벽 위로 올라가더니 갑자기 머리가 없어진다. 마주 오는 사람은 이걸 보지 못한다. 이걸 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나는 두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홀로 들어선다. 홀은 끝없이 높고 그림자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흙은 약간 퀴퀴하고 마치 텃밭의 흙처럼 다루기 쉽다. 마주 오는 들개 한 마리가 미리 한쪽으로 비키면서 벽 옆으로 달려 간다. 우리는 서로 지나쳤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뒤에 남겨진 문턱이 빛난다. 거기 문턱 위에서 순간적으로 홍염이 개를 휩싼다. 그다음에 개는 황야로 달려간다. 그리고 지금에야 나는 개의 털빛이 붉은색이라고 단정할 기회를 얻는다.- P71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시력으로 볼 수 있는 나라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길을 걷던 사람이 개와 마주친다, 해가 진다, 황야가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는 관심과 상상의 나라이다. 여행자는 외롭지 않다! 두 명의 누이가 양옆에서 걸으며 손을 잡고 이끈다. 누이 한 명의 이름은 관심이고 다른 누이의 이름은 상상이다.- P72
약속은 잊어버리자. 나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아니다. 나는 거리의 선량한 천재이다. 내게로 오시오! 내게로 오시라고!
3시 15분이다. 시곗바늘이 겹쳐져서 수평으로 뻗어 있다. 그걸 보고 나는 생각한다.
‘파리가 발을 비비는 거야. 심란한 시간의 파리 한 마리가?‘
어리석어! 무슨 놈의 시간의 파리야!
그녀는 오지 않는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다.- P73
관심의 세계는 머리맡에서 시작되고, 꿈나라로 떠나기 전에 당신이 옷을 벗으면서 침대 가까이로 끌어오는 의자 위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면 온 집 안이 아직 잠에 빠져 있고 방 안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고요하다. 움직임 없이 가득한 햇빛을 그대로 두려면 꼼짝하지 마시라. 의자 위에 양말이 놓여 있다. 갈색 양말이다. 그런데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당신은 갈색 직물 속에 위로 구불구불하게 뻗친 빨갛고 파랗고 오렌지 빛깔인 털 가닥들을 갑자기 발견한다.- P80
"기다려!" 돌멩이가 외쳤다.
"날 좀 봐!"
그리고 정말로 나는 기억했다. 돌멩이를 잘 살펴봐야 했다. 정말,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돌멩이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돌멩이가 관목들 사이에서, 풀숲 사이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손안에 쥐었던 나는 그것이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돌멩이는 연보랏빛이었을 수도 있고, 한 덩어리가 아니라 몇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화석이 그 돌멩이 안에 들어 있었을 수도 있다. 죽은 딱정벌레나 버찌 씨 같은 것 말이다. 그 돌멩이는 구멍이 숭숭 많이 난 것일 수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땅바닥에서 주워 든 것이 사실은 전혀 돌멩이가 아니라 녹색 빛을 띤 뼛조각이었을 수도 있다!- P82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진지한 이야기를, 보다 정확하게는 반박하거나 배척할 수 없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어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다고 치부되었다.
그뿐인가. 아이들의 대화나 생각, 열망 속에는 언제나 점잖지 못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의심했다.- P87
그때가 당도했습니다. 제가 위대한 문학을 읽기 시작한 겁니다. 그 영향이 굉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건이 마침내 일어난 겁니다.
생전 처음으로 돈키호테에 대한 지식이 제 두뇌에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한 인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들어갔습니다. 지상에서 가능한 형태의 불멸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저는 이 불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여자를 인식하는 것처럼 유일무이하고 반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P92
아버지에게는 제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것이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그 광경은 아버지에게 자기 만족을 불러일으키고, 아버지가 한 번도 이루어본 적 없는 어떤 업적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긍지와, 왠지 모르게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저한테는 그 웃음이 바보처럼 생각되고요. 저는 아버지가 보는 데서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그걸 피합니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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