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다독다독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 셀레스트 응
  • 12,420원 (10%690)
  • 2016-08-25
  • : 712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무겁다. 마치 비오는 날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벽지처럼 슬픔으로 눌러붙은 책장을 넘기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페이지 수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한 소녀, 리디아가 왜 호수에서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다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중국계 미국인 제임스 리(아빠). 의사가 되어 전통적 여성인 엄마에게 벗어나 다름을 추구하고 싶었던 메릴린(엄마). 그리고 부모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오히려 관심받고 있는 동생을 위로해줘야 했던 우주를 좋아하는 소년, 네스(첫째). 조용히 모든 일을 구석에서 지켜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조용히 눈치채고 있던 막내, 한나(셋째). 그리고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구심점이 되었지만 그것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끝내 죽어버린, 리디아(둘째).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리디아를 만나볼 수 있었다.

 리디아는 일종의 착한 딸 콤플렉스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한 번 버렸을 때 가족들은 유기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고 엄마가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며 많은 것을 포기했다. 제임스는 솔직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네스는 부모에게 온전히 관심받을 권리를 그리고 리디아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렸다.(막내는 이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후 이런 가족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포기했다.)
 겉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믿고 있었던 틀대로 리디아를 바라봐왔던 부모는 리디아가 행복하다고 생각을 했다. 매일 밤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며 부푼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신자가 없는 전화기에 혼잣말을 하고 되고 싶어하던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한 존재가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리디아가 절대로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은 바로 이런 모든 것들이었다. 부모에게 말한다면 실망하고 떠나버릴지도 사실들. 그러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은 점점 리디아의 조그만 몸 속에서 커져가고 결국엔 리디아를 집어삼켜버리고 만다.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전략은 flight or fight 전략이다. 멀리 날아가버려 피해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맞서 싸우는 것. 리디아는 자신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말함으로써 한 발 내딛으로 하지만 늦은 저녁 호수에서 수영을 터득하려고 하지만 너무 깊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목표는 진정한 삶이었지만 결과는 죽음이었다. 
 리디아가 사라지고 나서 가족들은 이상적인 가족상에서 추락해 자신의 위치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맞지 않는 퍼즐들이 억지로 끼워져 있었으나 하나의 퍼즐이 빠지게 되면 다시 퍼즐이 맞춰져 제자리를 찾아가듯 가족들은 많은 아픔과 좌절과 상처를 겪고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 아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서부터 가족들은 발걸음을 뗀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아프지만 그 아픔을 안고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얼마나 주변 사람들 특히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빠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엄마는 어떤 꿈을 품고 있었는지, 동생은 현재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과연 온전한 나로써 존재하는 지를 묻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대부분의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보게 되었다.
 내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 제목 그대로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말해달라고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것들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의 온도를 느끼지도 못할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때는 형식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라 어쩌면 가슴을 쑤실지도 모르는 묵직한 사실들과 감정들에 의해서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이뤄주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가 서로 살아가는 공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 부모님에게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는 어땠느냐고 묻거나 자식들에게 이거 했냐 저거 해라 가 아니라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이것들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해주려 하고 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것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가족이라는 존재가 병이 되어 나를 옭아 매는 순간 가족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족만큼 가족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존재는 없다는 신화와도 같은 믿음 때문은 아닌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내가 너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그리고 사랑을 다른 무언가로 포장하지 말고 날 것 그대로로 줄 것. 가족이라는 이름에 많은 꼬리표를 붙이지 말자. 그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