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지니 2011/09/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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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탈진 음지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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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 2011-07-27
: 470
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비탈진 음지>가 장편소설로 다시 나왔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1973년 중편으로 발표했던 이 작품에 끝나지 않은 시대의 비극이 존재하는 개발의 그늘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늘날 서울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의 고단한 삶이 사십여 년 전 상경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가슴 아픈 현실을 개작의 이유로 밝히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 산업화의 바람이 불면서 농촌 경제가 붕괴되고 적잖은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햇살이 드는 평탄한 양지인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귀퉁이 비탈진 음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생긴 문제들은 산업화가 남긴 심각한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어디서 물 한 그릇 얻어 마실 데가 없는 서울에서 칼갈이를 하는 복천 영감은 아내를 잃고 동네 사람의 소를 판 돈을 들고 무작정 상경합니다. 몰인정하고 매몰찬 도시에서 나는 역한 서울냄새를 견뎌가며 자식들을 키우는 복천은 삶의 파도에 떠밀려 살아갑니다. 도시에서 만난 고향 사람들은 "근디, 고향은 워디랑가?" 한 마디에 '한 땅 까마구' 끼리의 인정을 나눕니다.
남의 소를 판 돈으로 도망쳐 나와서 자신의 삶이 풀리지 않는다고 자책하는 복천은 막노동판, 지게꾼, 땅콩장사를 거쳐 칼갈이로 나섭니다. 생사를 모르는 큰 아들 영기를 잊지 못하며 공부 열심히 하는 둘째 아들 영수와 제본소에서 일하는 딸 영자를 바라보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가 만난 고향 사람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만 현실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든 사람들의 삶이 가슴을 무겁게 누릅니다.
복천이 서울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마음을 다해 도와주었던 떡장수 아줌마 가족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허망하게 떠나고, 같은 고향의 순박한 식모 아가씨도 속임수에 빠져서 술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결국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더 나빠져서 서울의 음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복천이 만난 복권 파는 소녀 인숙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는 지금도 인사동과 압구정동 뒷골목, 천호동, 구로동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삶에 가슴 아파 합니다.
그 시대의 통증을 외면할 수 없어서 쓴 <비탈진 음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질박한 사투리에 묻어나는 진한 향수에도 결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복천의 삶이 안타깝습니다. 이 책은 음지를 떠나지 못하는 무작정 상경 1세대인 복천의 아픈 삶에 전하는 위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려는 복천의 질긴 모습에서 햇살이 드는 내일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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