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호퍼가 남긴 1년간의 일기이다.
고된 노동의 시간중에서도 틈틈히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니
뭔가를 하느라 바빠서 뭔가를 못한다는 식의 말들은 핑계로 느껴진다..
<발췌>
- 네이션지와 코멘터리지에 실린 러시아 과학에 관한 글을 각각 한편씩 읽고 있다. 문화적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자유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그동안의 생각을 확인시켜주는글이다. 과학,문학, 예술을 존중하고 후원하는 전제 정치 풍토가 이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좋은 환경이 될수도 있다.
- 한사회의 활력과 원기를 가장 잘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유지 보수 능력이다. 어느 사회든 뭔가 새로 건설하는 일에는 열을 올리며 몰두 하지만, 보존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최고의 유지보수능력을 가진 국가는 말 그대로 가장 먼저 전쟁의 재난을 딛고 일어섰다.
- 손더스 레딩이 쓴책은 인도 청장년 지식인의 말을 세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의 주장, 무례함, 빈정거림, 독선까지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좀처럼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레딩의 기록은 날카롭고 설득력이 있다.
- 현대의 모든 대중운동에서 교육자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어나갔다. 가르치는 열정은 배우려는 열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본능적이며, 대중운동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 지식인은 자신이 쓸모있고 가치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부심에 유독 집착한다. 국가든 교회든 당이든 잘조직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통해 자부심을 찾는다.
- 벤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파놉티콘)에 집착하다 보편적인 행복으로 관심사를 바꿨다는 것은 지식인의 이상주의와 마음 깊이 도사리고 있는 감시자의 역할에 대한 열망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 역사가 가치있는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줘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사회환경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문학,미술,음악 등의 창의적 활동에 가장 적합한 환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뛰어난 능력을 보상해주는 환경이다.
풍부한 여가는 예술활동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이다. 일에만 매달리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지루할틈이 없고 꿈도 꾸지 않으며, 불평불만을 품지도 않기 때문에 창의적 활동이 둔화된다.
- 극도의 광신주의는 한 사회의 신념이 쇠퇴하는 징조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남부에서 노예제도 문제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을때는 더 이상 노예제도를 유지해 나갈수 없었던 시기였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가 물러간후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했고, 30년전쟁의 종교적 열풍이후 17,18세기 회의주의가 뒤를 이었다.
- 공황기에 베이브릿지를 건설할 때 지식인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일이 우연히 떠올랐다. 지식인들은 인공구조물이 자연 경관을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인간이 이룩한 실용적인 업적을 근본적으로 깎아내리면서 자연을 찬양한다. 기념비와 동상을 비롯해 비실용적인 구조물은 반대하지 않으면서 다리와 고속도로는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 아시아를 깨우는 광신주의. 아주 적은 보수, 아니면 아예 무보수로도 일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려면 광기를 퍼뜨리면 된다. 열정은 기술과 자본까지도 대체할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서둘러 현대화의 길을 걷고 싶다면 사람들을 어떻게 말로 꾀어 일하게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서 ‘말로사는 지식인들’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정체된 사회를 일깨우는데 빛을 발한다.
- 기독교와 비교해볼 때 이슬람교는 교회와 국가, 일과 성과, 정신과 육체 간의 내적모순이 거의 없었다. 내적모순이 심해지면 사회와 제도가 붕괴될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사실 활력과 창의적 활동은 내부의 압력과 긴장 속에서 싹튼다.
- 진정한 국제화는 중산층의 국제화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은 어느 나라에서나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적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이런 중산층이 살아가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 행위에 대한 충동이 좌절되면 그 진가가 창의성으로 드러난다. 사람은 좌절을 겪으면 타고난 적성에 따라 혁명가나 작가, 화가 등으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다.
- 내가 아는한 인생은 우연한 일들의 교차로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한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면 우연한 기회와 그 기회에 대처하는 능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 그림과 음악과 춤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 현상, 비실용적이고 화려한 것이 우위에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인간의 독창성은 비현실성과 사치에서 찾을수 있다. 사치품을 만들기 위해 애쓸 때 인간은 보다 과감해지고 더욱 독창적으로 변한다. 인간이 발명한 실용적인 도구는 대개 비실용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 거의 일자무식인 사람들과 함께 생을 보내면서 놓친 것이 많을까?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지적으로 고립되어야 한다. 나는 책이 보여주는 세상과 세상이 보여주는 책을 통해 자극을 받는다. 배운사람들,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 주장에 능한 사람들과 살아갔다면 과연 내 생각이 얼마나 뻗어갔을지 알수 없는 일이다.
- 만약 동료를 내 형제라고 여긴다면 정말로 그들을 사랑하게 될까? 사실 동료애는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하고 참아내는 포용의 문제이며, 동료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를 비롯한 타인을 여행중에 만난 친구로 보는게 가장 좋다.
- 꽤 많은 경우, 생각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한 이유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걸 표현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 내가 볼 때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굴욕과 세계대전에서 입은 상흔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은 분위기에서 싹텄다. 평생동안 금욕하고 자제하며 힘들게 일해서 모은 저축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됐을 때, 모든 가치가 붕괴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상상할수 있단 말인가.
- 자유란 인간을 사물로 바꿔놓고, 수동적이고 예측할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권력과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중요한 사실은 자유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이룰수 없는 사람들, 자유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권력에 목말라한다는 점이다. 자유는 우리에게 인간적이고 독립적인 고유성을 실현할 기회를 준다. 절대권력도 고유성을 부여할수 있다. 절대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사람들을 꼭두각시나 로봇, 장난감, 동물로 전락시키고 겉모습만 인간으로 남겨놓을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절대권력은 다른사람의 인간성을 박탈해서 고유성을 획득한다.
- 인간의 고유성은 안정되고 연속적인 환경에서만 안정되고 지속될수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영역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는 인간본성에는 맞지 않다. 19세기 후반 변화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을 때, 인간성 말살과정도 동시에 급물살을 타고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 모세는 신화등 그 모든 것을 동원해서도 노예르 자유인으로 변신시킬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세는 이들 노예를 이끌고 다시 사막으로 가서 40년을 기다렸다. 노예세대가 죽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약속의 땅에 갈 준비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린 것이다. 모든 혁명지도자는 민중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은 40년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기성세대 제거를 위한 숙청과 공포정치이다.
막스 플랑크는 과학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인정받는 이유는 반대론자를 설득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결국 죽고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 그 사실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