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때부터 나는 모두가 날 좀 내버려 두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힘으로 돈을 벌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혼자가 되었다. 서울 구석 코딱지만한 지하방에 이사왔을 때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는 그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인줄도 모르고 혼자라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어찌나 변덕스런 존재인지(아니면 그저 내가 변덕쟁이!) 혼자 사는 해가 늘어나고, 2년마다 이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집을 보러 다니면서 아, 나는 정말 혼자로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찾는 곳은 2년 뒤에 머물지 떠날지를 고민해야할, 대부분 오르는 월세에(내가 부족하여) 등떠밀려 떠나게 될 그런 장소였다. 아이였을 때 어떻게든 혼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면, 무너지지 않으려 바등바등 하는 지금은 포근하고 든든한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기분이다. 포근하고 든든한 것. 그것이 어쩌면 아직 만나지 못한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이야기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민과 해나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보트피플이었던 뚱이, 이슬람 문화권 인도 카슈미르에서 온 찬드라, 아프리카 족장의 딸인 웅가,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인 미셸, 중국 신장 위그루자치구에서 온 위그루족 아빠과 한족 엄마를 둔 샤샤 가족. 심지어 난민캠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한권의 책에 이렇게 빽빽한 사연이라니. 각각의 사연으로 대하 장편소설이 나올법도 하다. 생명과 인생을 걸고 고국을 떠나 온 사람들의 이야기라 모두 절절하다. 하지만 그 사연이 엮인 사이사이 유머와 따뜻함이 있어 책장은 큰 부담없이 넘어간다. 책에 밑줄 친 부분들을 다시 보니, 대부분 찬드라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겪은 고통과 적대감, 무관심 그 모든 폭력들에도 살아남고 한국으로 온, 여기서 새 삶을 살아가려한 그녀에게 제일 마음이 쓰였다. 찬드라에 가장 마음이 갔던 이유는 웅가나 샤샤와는 달리 혼자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뚱이도 혼자였지만, 그는 한국말도 하고 붙임성도 좋은 성인 남자라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가진 상처와 인생의 무게는 타인이 이해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공존하는 이 소설의 결말은 그런 배려의 균형을 맞춘탓이다.
우리나라는 난민 심사가 외교부가 아닌 법무부 관할이라고 한다. 몇해전 시리아 난민이 유럽과 전세계로 넘쳐나던 때, 우리나라의 난민 심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 우리는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편이고 난민으로 인정하는 과정도 꽤 까다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처음 혼자 살던 집은 이태원 어드매 달동네였다. 역 주변의 화려한 거리와는 달리 저 뒤의 언덕너머로는 골목골목마다 사연많은 외국인들이 살았다. 책을 읽으니 그때 이웃들이 떠올랐다. 한국말을 잘하던 덩치 큰 소말리아 아저씨, 지금은 사라진 완탕이 가게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떤 차도르를 입은 한국 여성과 어린 두 아이. 늘 새우 완탕을 아주 맛있게 먹더랬다. 한국 국적을 따려고 고군분투하던 모로코 가족. 주말이면 친구들을 초대하고 북적북적 늘 즐거워보였지만 가끔 늦은 밤 깜짝 놀랄만큼 엉엉 울곤했던 필리핀 커플. 그 동네에서는 나도 이방인이었고 함께 고독과 외로움을 오갔다. 책의 뒷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 '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 아닐까요.' 소설속의 인물들은 난민과 대한국민할 것없이 연대한다. 서로 아는 것을 알려주고 도와주고 내것을 나눈다. 절절한 이야기도 아픔도 나누며 함께한다. 모두 남남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족같다. 지구별에 사는 나는, 여전히 난민이다. 가끔 아등바등 무너지지 않으려 사는 내 모습을 보면 이 곳은 내 고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고향을 찾거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향처럼 따뜻하고 든든한 마음을 찾는다. 그 마음이 내 안에 있기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마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책을 읽는데, 최근에 읽은 시 한 편이 생각났다. 황인숙 시인의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에 실린 시다.
그림자에 깃들어
황인숙
이방인들을 보면 왠지 슬프다 한 아낙이 오뎅꼬치를 문 금발 어린애들을 앞세워 지나가고 키 작은 서양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회색 양복 서남아 청년이 지나간다 먼먼 땅에 와서 산다는 것 노인과 어린애 어느 쪽이 더 슬플까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