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페미니즘의 고전 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글을 읽었습니다. 인용된 구절은'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였습니다.
에이포로 9장 정도 분량의 소설을 쓰는 일은 여러가지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이래서 내가 그동안 4장을 못넘겼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영영 뛰어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했습니다. 살면서 그냥 하면 그냥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는 건 배웠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날 밤, 그냥 해도, 해도해도 안되던 어느 날의 밤, 머릿속에 이 문구가 '딩동'하고 초인종을 눌렀습니다.'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나는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부터 생각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도요.
'자기만의 방'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 밤 그냥 책을 폈습니다. 이 책은, '여성이 픽션을 쓴다는 것'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 문체는 자기만의 방을 모방한 것입니다.)
제 방 창가의 책상에는, 초록색 갓을 쓴 스탠드가 있고, 몇개 남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향이 나는 초가 있으며, 장시간 앉아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의자가 있습니다. 세를 들어 사는 집이지만 제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연 500파운드를 제가 버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시가로(?) 얼마일까요) 어쨌든, 이번 달 월세는 냈습니다.책상에 앉아서 책에 밑줄을 그으며 깨닫습니다. 내가 메리 카마이클이구나.책은 연결돼어 있으며 결코 외톨이로 탄생하지 않는다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습니다. 글 또한 그럴 것입니다. 좋아하는 소설이 있기 때문에, 그 소설에 받은 감동과, 읽으면서 받은 위로로 인해 저 또한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고립되지 않고자 쓰는 것이니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메리 카마이클에게 100년의 시간을 주자고,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하고 반을 덜어내게 해주자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쨌거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제 반을 덜어내는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쓰고 싶다면 말이지요.나는 울퉁불퉁 모가 난, 이제 막 여정을 시작한 돌덩이였습니다. 데굴데굴 굴러서 이것저것 떨구어야 할 것입니다. 떨구어야 할 것은 많고도 많습니다. 분노와 원망 슬픔같은 감정들이 제게도 가득합니다. 그런 감정들은 마음을 좁게 만듭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좋은 글을 쓰려면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메리 카마이클의 과제는 오른쪽이나 왼쪽을 돌아보지 않고 가뿐히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라 했습니다. 주저 앉으면 끝이라고, 비웃으려고 멈추기만해도 끝이라고. 그냥 내 길을 달려 울타리를 뛰어넘으라고.
세상은 제가 글을 쓰던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플로베르가 정확한 문장을 찾는지 마는지도 상관이 없는데 서울에 사는 메리 카마이클이라고 다를까요.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비웃음을 사거나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니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진실인지. 소설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게다가 계속 쓰면, 어떻게 되는지.(좋아는 지는지) 알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려움보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생이 다 내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 서울의, 메리 카마이클 Lee는, 나만의 방에 앉아서 '자기만의 방'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습니다. 나는 뜨겁고도 치열한 심장을 가진 여러 여성 작가들이 기다려마지않은, '천재도 아니고, 돈과 시간, 여유 등의 바람직한 조건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첫 번째 소설을 쓰고 있는 무명의 여성'입니다. 나는 성실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글이 막힐 때면 요정처럼 나타나 아주 조금 실마리를 선물하는 인생의 미스터리를, 계속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왼쪽도 오른쪽도 보지 않고, 분노나 슬픔에 주저하지 않고 달려서 울타리를 넘고 싶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 P21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실상 마음과 몸, 두뇌가 함께 결합되어 있고, 앞으로 백만년이나 지나면 모를까 각각의 칸막이 속에 격리 수용된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를 나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지요. 저녁 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쇠고기와 프룬을 먹고는 등뼈의 램프에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P34
(...)익명성이 여성의 핏줄에 흐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베일로 가리려는 욕구는 아직도 그들을 사로잡고 있지요. 지금도 그들은 명성에 대해서 남자들만큼 신경 쓰지 않으며, 또 대체로 묘비나 길 안내판을 지나면서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앨프, 버트, 체스와 같은 남성들은 멋있는 여자 또는 개 한 마리라도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저 개는 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서 그렇게 느끼겠지요. 물론 그것은 단지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땅 조각이거나 검은 고수머리의 남자일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의사당 광장과 지게스 알레 그리고 그 밖의 거리를 연상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아주 멋진 흑인 여자를 영국 여자로 만들고 싶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여성만이 누리는 커다란 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89
세상은 사람들에게 시나 소설, 역사를 쓰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플로베르가 정확한 단어를 찾든지 말든지, 칼라일이 이런저런 사실을 변밀하게 입증하든지 말든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당연히 세상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보상을 치르지 않겠지요. 그래서 키츠나 플로베르, 칼라일 같은 작가들은 특히 창조적인 젊은 시절에 온갖 형태의 분열과 낙담을 경험합니다.(...)
키츠와 플로베르와 그 밖의 천재적인 남성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그녀에게는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세상은 남자들에게 말하듯이 "네가 원한다면 써라.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글을 쓴다고? 네가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라고 말하지요. (...)- P91
(...)예술가의 마음은 자기 속에 내제한 작품을 흠 없이 완전하게 풀어놓으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처럼 작열해야 합니다. 그 안에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워지지 않는 이물질이 끼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마음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의 마음 상태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 던이나 벤 존슨, 밀턴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원한이나 악의 반감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가를 상기시키는 어떤 ‘계시‘에 의해 방해받지 않습니다. 항의하거나 설교하려는 욕구, 자신이 받은 모욕을 공표하거나 원한을 갚으려는 욕구, 세상을 자신이 겪은 곤경과 불만의 증인으로 삼으려는 욕구, 그 모든 욕구가 그에게서는 불타올라 소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이 흐르는 것입니다.- P99
(...) 게다가 책이란 문장들을 이어 붙여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빌리자면, 아치나 둥근 지붕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 여성이 작가가 될 무렵 옛 문학 형식들은 모두 이미 굳어지고 결정된 형태였습니다. 소설만이 그녀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새로운 것이었지요. 이것이 아마 여성이 소설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 (...) 여성이 자유로이 팔다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틀림없이 그녀는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 것이며 반드시 운문이 아니더라도 자기 내면의 시를 전달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것입니다. (...)
(...)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 합니다.(...)
- P135
(...)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픽션에만 한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나를(나와 같은 사람이 수천 명이나 있지요.) 즐겁게 해주고 싶다면, 여러분은 여행과 모험에 관한 책, 연구서와 학술서, 역사와 전기, 비평과 철학, 과학에 대한 책들을 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틀림없이 픽션 기법에 도움을 주겠지요. 책이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픽션이 시나 철학과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