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kidordin님의 서재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 마르그리트 뒤라스
  • 9,720원 (10%540)
  • 2019-01-18
  • : 1,177
한번에 써내려간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론 한번에 써내려가도 고치는 건 수십 수백번이 되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쓰는 동안 무척 낑낑 거리며 힘들었거나, 여러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글이 결국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곤 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쓰는 글은 반드시 부끄러운 글이 되고 만다. 나의 경우, 쓰면서 얼마나 막막하고 길을 잃었느냐가 결국, 층을 만들었던 것 같다.  패스츄리의 층처럼, 그렇게 쓰는 동안의 어려움은 켜켜이 기꺼운 버터가 되어주었다.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 이야기는 좀체 질리지 않는다. 작가마다 하는 이야기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런 것이 재미있다. 표현도 다르고 문체도 다르고, 내게 와닿는 부분들이 다 다르다.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서는, 그녀의 뚝뚝 떨어지는 고독이 내 맘에 똑똑 닿았다.내게는 몇시간이고 전화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시간들도, 제발 좀 혼자 있고 싶다고 기도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그 지긋지긋한 고독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고독이 없었을 때, 부족했을 때 관계가 삐그덕 거리거나 내가 흔들렸다. 글을 쓸 수 없었다.글을 쓸 수 없으면, 나는 자주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글을 쓸 수 없으면, 내가 아닌, 더 완벽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내가 나를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고독과 의혹.‘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을 읽고서 노트에 적었다.고독과 친해지고 의혹을 두려워하지 말기.나는 의혹이 생기는 순간을 잘 못견디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문제인가 생각했다. 이제는 그럴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겠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의혹, 그것은 곧 쓰기’이니까.


글쓰기의 고독은 그것 없이는 글이 만들어지지 않는, 혹은 더 써야 할 것을 찾느라 피 흘리며 부스러지고 마는 그런 것이다. 글이 피를 잃으면 쓴 사람마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책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고독해야 한다. 저자의 고독, 글의 고독. 자신을 둘러싼 침묵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집안에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하루가 흘러가는 매시간,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든 켜 놓은 전등 불빛이든 어느 빛에서나, 정말로 그래야 한다. 몸이 처한 그러한 실제의 고독, 그것은 침범할 수 없는 글의 고독이 된다. 이 말은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다. 처음 고독 속에 칩거하던 그 시기에 이미 내가 해야 할 일은 글 쓰는 것임을 깨달았다. 레몽 크노가 확인해 주기도 했다. 그는 단 한 마디로 말했다. "다른 것 다 관두고, 써요."- P11
내 방은 침대가 아니다. 이 집에서도, 파리에서도, 트루빌에서도 그렇다. 오히려 창문이고, 탁자고, 늘 쓰던 검은색 잉크고, 어디였는지 찾기 힘든 잉크 자국이고, 그리고 의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습관들이다. (...) 책을 쓰는 여자들은 자기 책을 연인이 읽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 장을 탈고하면 나는 연인이 보지 못하도록 감췄다. 정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여자인 데다 연인 혹은 남편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 P12
고독은 만들어진 상태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독은 만드는 것이다. 아니, 저절로 만들어진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이곳에 혼자 있어야 한다고, 책을 쓰기 위해서 혼자여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랬다. (...)- P13
(...)남자들이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 바로 글 쓰는 여자. 남자에게는 잔인한 일이다. 모든 남자에게 어려운 일이다. (...)- P14
살다 보면 찾아오는 한 순간이 있다. 아마도 운명적인, 피할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 의혹이 드는 순간이다. 결혼, 친구들, 특히 부부의 친구들, 모두에 대해서. 아이는 아니다. 아이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그렇지 않다. 그런 의혹이 사방에서 점차 커 간다. 그 의혹은 혼자다. 그것은 고독의 의혹이다. 의혹은 바로 거기서, 고독으로부터 태어난다. 이미 그렇게 부를 수 있다. 내 이야기를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누구나 작가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차이점이다. 그것이 진리다. 다른 건 없다. 의혹, 그것은 곧 쓰기다. 그러므로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와 함께, 모두 글을 쓴다.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일이다. - P18
글을 쓰면 원시적이 된다. 삶 이전의 야생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여전히 그런 상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숲의 원시성,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원시성이다. 모든 것이 두려워지는, 삶과 구별되지만 삶과 나뉠 수 없는 원시성. 악착같이 매달린다. 육체의 힘이 없으면 쓸 수 없다. 글쓰기에 다가가려면 자기 자신보다 강해져야 한다. 자신이 쓰는 것보다 강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그저 글쓰기, 써진 글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들이 밤중에 내지르는 울음이다. 모든 사람의, 당신들과 나의 울음. 개들의 울음이다. 사회의 집단적인, 절망적인 저속함이다. 고통이며, 또한 그리스도, 모세, 파라오들, 유대인들, 유대의 어린아이들. 행복, 가장 폭력적인 행복. 언제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P20
절망을 버티며 쓰기. 아니, 절망을 품고 쓰기. 그 절망의 이름은 모르겠다. 이전에 쓰인 것을 옆에 두고 쓰는 것은 이전의 것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망친 것을 망가뜨리기, 그것은 다른 책을 향해, 바로 그 책의 가능한 다른 상태를 향해 가기다.
- P24
(...) 책의 글쓰기, 써진 글은 그렇다. 결국 다 내맡기고 놓아 버리게 된다. 자신의 고독 속에서 혼자다.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언제나 위험히다. 그렇다. 밖으로 나가 외칠 용기를 냈기에 치러야만 하는 대가.- P26
(...)절대 울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울기, 우는 일도 일어나야 한다. - P45
나의작은 오빠는 일본과 전쟁 중일 때에 죽었다. 무덤도 없이 죽었다. 공동 묘혈 속으로, 방금 전에 던져진 다른 시체들 위로 던져졌다.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고 너무 잔혹해서 참을 수가 없다.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시체가 된 몸들이 뒤섞인 게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고, 그 몸이, 수북이 쌓인 다른 몸들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의 몸, 바로 그의 몸이 죽은 이들의 구덩이 속에, 아무 말 없이, 한마디도 없이, 던져진 것이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외에는 단 한 마디도 없이
- P53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면 글쓰기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울부짖을, 눈물 흘릴 태세로 글쓰기가 버티고 있어도 그것을 쓰지 않는다. 바로 그런 차원의 강렬한 감정들, 지극히 섬세하고 더없이 심오하며 무척이나 육체적인, 또한 본질적인,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삶들을 온전히 육신안에 품어 부화시킬 수 있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글의 행렬이 몸을 거쳐 간다. 몸을 관통한다. 바로 그것이 말하기 어려운, 너무도 낯선, 하지만 한순간 우리를 사로잡는 그 감정들에 대해 말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 P71
-그녀는 죽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여전히 살아갈 거예요.
-그녀는 살아가요. 죽지 않아요. 나중에 죽죠. 한 남자의 포로이면서 동시에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환상으로 죽어요.
하지만 죽는 날까지 바로 그 환상으로 살아요.
알기에 사는 거죠. 사랑이 아직 있음을, 온전히, 비록 부서졌을지언정 그대로 있음을 알기에, 그 사랑이 여전히 매 순간의 고통임을, 하지만 여전히, 온전히, 더 강하게 있음을 알기에 살아요.
그리고 그래서 죽어요.- P91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