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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ordin님의 서재
  • 아쿠아리움
  • 데이비드 밴
  • 13,500원 (10%750)
  • 2016-09-12
  • : 90
데이비드 밴의 '아쿠아리움'을 읽고 한동안 멍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의 책 '자살의 전설'을 읽고 난 후에도 이런 감정을 느꼈다.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이제껏 미뤄온 슬픔과 분노를 더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들은 누른다고 소멸하는 것도, 무시한다고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주저 앉은 다리 위에 올려놓고 부둥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궁금한 것이다. 이 슬픔과 분노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제 겨우 바라보게 됐는데, 이걸 또 어떡해야 하는지. 이런 걸 보고 산 넘어 산이라고 하는 지,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지.일단 우는데 까지 울어 보았다. 
책을 읽으며 케이틀린과 케이틀린의 엄마 셰리, 그리고 셰리의 엄마, 아빠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슬픔에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는 절박함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특히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폭력은 전염되기도, 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셰리도 셰리의 엄마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상처많았던 인생을 몰라준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몰라준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했고, 그 과거로부터 도망치려고 온 인생을 걸고 발버둥을 치는지 화가 날 것이다.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나약함과 아픔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품 안에서 안전하고 싶은 거다. 바다속 물고기들 처럼. 
이번 소설 '아쿠아리움'에서 데이비드 밴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내, 용기, 사랑인 것 같다. 불가능할 것 같은 용서는 인내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인내의 과정은 마치 누구나의 어느정도 인생처럼,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용서를 구하는 자는, 정산 혹은 청산하듯 용서 받기에 조급할 것이 아니라 인내해야한다. 그래야 시작이 진행되고 그 시작은 현재진행형의 원동력을 얻는다. 그 인내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노인(할아버지)은 책의 끝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냥 곁에 있기. 곁을 지키며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 것 같고, 너무나 나약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말이다,  나는 사슬을 끊고 싶다. 슬픔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폭력을 낳는 그 사슬을 끊고 싶다. 상처받은 마음이 인생까지 좀 먹게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나약함과 고통을 이해받고 싶다. 하지만 먼저 사슬을 끊고 운명의 틀을 넘은 후에 그러고 싶다. 나를 이해시키고 싶다는 명목하에 폭력적이 되고 싶지않다. 나를 이해시키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과 존중이 충분히 깃든 노력이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에대한 감사함과 존중 없이 '그래야만 한다'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소유하려는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이 '소통'이었으면 좋겠다.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장을 다 덮어도 눈물은 나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이것들을 이제라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버릴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나의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친구에게 이 책이야기를 하며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준 것은(카톡 아닌 육성으로) 무척 감사한 일이다. 데이비드 밴을 알게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 작가를 블로그 이웃님을 통해서 알게되었는데 그 인연도 감사한 일이다. 아직 못 읽은 데이비드 밴의 책이 한 권 남아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의 책은 한 권 한 권이 푸닥거리 같고(여지껏 읽은 책이 두권입니닷 ㅎ), 읽을 수록 왠지 용감해지는 기분이다.  감사에 감사. 인연의 인연. 좋은 사슬을 만들자. 감사의 사슬을 이어가다 보면 빛이 어둠을 이기듯 뭐라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노인은 그 앞으로 가서는 마치 신 앞에라도 나아간 듯 입을 벌리고 섰다. 그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 모습은 내가 아는 어떤 어른과도 같지 않았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는 언제든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출 준비가 되어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을 지켜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p26
노인은 한 손을 들어 내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넌 안전할 거다. 노인이 말했다.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안전하다고 했다. 그는 늘 옳은 얘기만 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렇게 매달릴 누군가가 필요했다. 풀잎처럼 바스락거리는 머리칼, 마치 해마의 갑옷처럼 딱딱한 어깨뼈에, 지독히 못생겼지만, 나는 그가 나만의 산호 가지라도 되는 듯 그렇게 그에게 매달렸다.
-p30
(...)우리는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들을 지우고, 지난 마음들을 지워간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p83
노인은 내 손을 잡고 해룡이 있는 수조 쪽으로 걸어갔다. 담청색 모래와 잎이 무성한 초록빛 해초들, 그리고 금빛 나뭇가지로 변한 해마의 몸에 마치 날개와도 같은 나뭇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 모습을 충분히 오랫동안 지켜본다면, 마치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질 것이다. 온 숲이 깨어나 속삭이듯 말하며 대지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나무 기둥은 공중에 뿌리를 내린 듯, 나뭇가지를 따라 수직이 아니라 모두 수평으로 저 멀리 뻗어나간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다.
-p89
(...)그 아이를 떠난 건 정말 지독한 일이었어.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단다. 그건 오로지 너를 알고 싶고, 또 그 아이를 알고 싶어서야. 나도 가족의 한 사람이 되고 싶단다.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용서받길 바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는 거야.
-p181
할아버지는 눈이 오는데 창문도 없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차가운 바람을 그대로 맞아 몸이 얼어붙을 것이다. 사방엔 자갈처럼 안전유리 조각들이 널려 있겠지. 스포츠 코트와 칼라가 달린 셔츠를 입고.
그렇게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사처럼 보이고 싶은 어느 늙은 기계공의 모습이. 위엄을 갖추려 애썼고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싶었으나, 그 밤 다 망가져 고물이 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헤드라이트도 후미등도 없어,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겁이 났다. 충돌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이는 검은 형체.
-p190
부모와 관련해서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어. 부모는 신이나 마찬가지야. 우리를 만들고 또 우리를 파괴시키지. 세상을 그러모아서는 원하는 모양대로 다시 만들어버리는 거야. 그러고 나면 우린 영원히 그게 바로 세상의 전부인 줄 알게 되는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말이야. 그 외에 달리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해.
-p204
그새 몸에 열이 다 식어 살갗이 오그라들었다. 내 몸은 마르고 창백한데다 추워서 울긋불긋해지고 있었다. 내 발이 저 아래 있는 듯 느껴졌다. 몸이라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그 모양도 그렇고, 밖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또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p224
칠리가 데워지자 나는 엄마에게 볼을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팔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한 숟가락씩 떠먹여주었다. 엄마는 꼭 필요한 만큼만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었다. 엄마는 마치 좀비처럼 부분적으로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때 같으면 엄마는 지금 일터에 있었을 것이었다. 눈보라와 조명들 속에서. 철커덕거리는 금속들과 빠르게 돌아가는 디젤 엔진으로 이루어진 전초기지는 일 년 내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곳에서 엄마는 더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몸뚱이, 사람처럼 보이는 일종의 로봇이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정반대이다. 겉모습은 죽어 있지만 오로지 엄마 자신이기만 한 마음속 어딘가에서 엄마는 길을 잃어버렸고, 기억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p229
스티브 아저씨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엄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에게 팔을 둘렀다.
아저씨는 말했다. 셰리, 당신을 사랑해.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 그리고 케이틀린도 언제나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할 거야. 이 아이는 모든 순간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 당신이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든 끝장이라고 생각하든, 그 순간순간 당신이 느끼는 것들을 모조리 보고 있다고. 이 아이는 당신 딸이야.
아저씨는 엄마에게 머리를 맞대며 엄마를 감싸안았다. 시트 아래로 엄마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흐느끼느라 엄마는 몸을 살짝 웅크렸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얼른 엄마 옆으로 가서 역시 엄마를 감싸안았다.
셰리,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 다 좋아질 거야. 두 사람도 좀더 편하게 내버려둬.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미워.
아마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서일 거야. 아직 뭔가 남아있는 거지.
-p237
너에게 빚이 있다는 걸 내가 잊고 있었구나. 너는 아이였고, 모든 게 필요한 상태였어. 내가 잊고 있었구나. 아내에게 역시 나는 빚이 있지. 그래, 내 거래는 신과의 것만이 아니었어. 내 문제만이 아니었지. 그걸 잊다니 정말 형편없구나. 내가 이기적이었어. 미안하다. 인정해야겠지. 그래도, 이제 이해가 되는구나. 내가 그때 왜 떠났는지.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미처 몰랐던 거야. 지금까지도. 이 일들을 다 말하고 나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니 적어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내가 왜 그랬는지. 아마 결국 같은 말이겠지만.
그럼, 축하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엄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너무나 낯설었다. 그래, 축하하자꾸나. 한 사람의 인생은 다른 누구도 결코 알 수가 없단다.
-p283
숲은 아직 아무것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도무지 깨어날 수 없는 꿈과 같았다. 나는 동화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라도 늑대와 우리를 유인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어둠의 세계를. 우리가 구체화 시킨 모든 두려움들, 모든 양식과 형상들은 단지 숨어 있을 뿐, 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p316
그때 일에 대해서 당신은 물어볼 자격이 없어요.
아까는 물어봐달라고 하지 않았었니. 여기까지 오는 내내, 나는 다 끝났다고, 네가 나를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한 거야. 물어봐주기를 원했다고 말이야.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너는 내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셰리, 너는 언제까지고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실패했지. 너를 포기햇어. 하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어. 매일같이 너를 생각했단다. 그리고 대체 얼마나 상황이 나빴던 건지 나도 이젠 알아야겠다.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도 알아야겠고. 그 끝을 알아야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아마 난 훨씬 더 나쁜 쪽으로만 상상하게 될 거야.
-p321
할아버지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엄마에게로 다가가 양팔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감싸안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p337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물속에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숨을 쉬기 위해서든,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든. 하지만 물이 뜨거워져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샬리니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가장 완벽한 사랑이었다. 우리가 너무 어렸으므로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때 우리는 절대적이었고, 어른들이 그렇듯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샬리니의 전부를 받아들였다. 무엇 하나 남겨놓지 않았다. 그애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위였다. 사회계급에서도, 가족관계나 지능, 교양이나 지식과 미모에서도. 그때 우리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치스러웠던 그날조차도. 나 역시 내 모든 것을 그애에게 다 내주었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허락된 날이었다. (...)
-p338
(...) 때때로 최악의 순간이 최고의 순간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p339
그날 아침, 할아버지가 우리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할아버지는 부모보다 나았다. 네 엄마는 괜찮아질 거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 게 떠오른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도망가지 않는 법을 배웠고,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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