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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ordin님의 서재
  • 몰입
  • 패티 스미스
  • 11,700원 (10%650)
  • 2018-09-05
  • : 1,445
 패티 스미스는 예민하다. 난 사실, 그녀의 음악보다 글을 더 좋아한다. '저스트 키즈'라는 책을 읽고 패티 스미스에게 반했다. 그녀의 글에는 특유의 열정과 감수성이 가득하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일상이 만들어낸 인생은 예민하고 그만의 깊이와 색깔이 있다. 그녀의 글처럼. 감성이 넘치는 어떤 문장은 시 같기도 하다.  이 책 '몰입'이 나온다기에 출간되기만을 기다리다, 마침 '알라딘'에서 이 책으로 북펀딩을 하길래 참가했다. 그래서 책이 출간 되자 마자 받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막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기다리던 책을 손에 쥐는 일은 행복이었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첫번째는 패티 스미스가 짧은 소설을 쓰기까지의 짧막한 여정이다. 그녀는 출판 행사로 초대받아 프랑스로 가게되는데, 여행에서 읽으려고 급히 선택해서 가져간 책으로부터 소설쓰기의 영감은 시작된다. 여행기인 줄로 알았던 글이끝나자, 그녀가 단숨에 써내려간 단편소설이 나온다. 여기가 두번째 부분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고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다. 나는 이 세번째 부분에서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우연히 같은 구절을 도서관과 서점에서 두번 만났다.  그것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 중에서 나온 구절이었는데,
 예술 작품은 한없이 고독한 것이며 비평 같은 것으로는 그것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간직할 수 있으며,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 내가 반하는 대목은 언제나 오직 사랑이었다.  나는 종종 예민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예민하다는 말에는 부정적인 뜻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이것은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는 뜻이다.   패티 스미스의 예민한 글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이런 예민함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해보았다. 책에 대한, 글 쓰기에 대한, 삶에 대한 사랑.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도 잘 살리고, 스토리의 유기성도 훌륭한, 묘사가 아름답고 문장이 정확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독과 사랑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기서 예민함이 나오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야 그 모든게 들리고 보일 것이다. 고독과 사랑은 가장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패티 스미스의 예민한 글을 읽으며,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다. 나도 용기를 내야지. 록커가 쓴 아름다운 글은, 나만을 위해 공연했다. 이렇게 치밀한 구성의 공연이 또 있을까, 글을 쓰기까지의 영감을 받는 여정, 그리고 완성된 소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에세이까지. 글을 쓰자, 써야한다. 쓰자. 계속 쓰자.
 ♬


<리스뚤레스>의 여성 화자 에르마의 섬세한 목소리를 새롭게 들으며 옷을 입고 공책과 파트릭 모디아노의 ‘한밤의 사고‘를 한 권 집어 들고 길을 건너 동네 카페에 간다. 노동자들이 잭해머로 길을 파고 있고 귀가 멍멍해지는 진동이 카페의 사방 벽을 흔든다.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책을 읽는다. 그물망 같은 ‘한밤의 사고‘의 세계를 터벅터벅 걷는다. 불안한 거리들, 불완전한 주소들, 쓸모를 다한 우회로들, 결국 허무의 원으로 귀결되는 사건들. 글을 못 쓰는 건 한탄스럽지만 모디아노의 우주라는 활력 넘치는 마비 상태에 자아를 잊고 몰입하는 일은 글쓰기와 맞먹는다. 편집증과 미세한 디테일에 대한 강박을 어슴푸레 하게 감지한 상태로 화자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면 주위의 공간이 바뀐다. 한 문장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리 없이 손을 뻗어 펜을 찾게 된다.
-p18
전화벨이 울려 마법의 주술은 깨어진다. 내 비행기 편은 취소되었다. 더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부르고 컴퓨터를 보관용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나머지를 여행 가방에 쑤셔 넣는다. 아직 무슨 책들을 가지고 갈까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택시가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다. 책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 해도 파도처럼 공황이 덮쳐온다. 딱 맞는 책은 해설사 역할을 해주고 여행의 톤을 결정하며 심지어 궤적까지도 바꿔 버린다. (...)
-P19
운명에는 손이 있으나 그 손이 미리 정해진 건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찾다가 무언가 다른 것을,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찾았다. 울림이 깊지만 생경한 목소리에 마음이 동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용과 참조의 교향악을 소호나하는 빛의 주크박스에 이끌려 여행을 떠났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추상적 거리들을 배회하며 심지어 내 것조차 아닌 세계를 실로 엮었다.
-P46
내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왜 그렇게 도착적으로 처음의 길에서 일탈했는지, 그 과정은 고찰할 수 있겠으나 왜 그랬는지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범죄자를 추적해 구속하는 데 성공한들 범죄자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와 ‘왜‘는 분리할 수 있는 걸까?
-P47
-모든 생각이 감정으로 변형되는 거예요. 내게 스케이팅은 순전한 감정이라고요. 완벽을 향한 관문이 아니라고요.
-P92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걸까?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셔터를 내린 창문이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음이 소거된 집이 있었다. 딜런 토머스에게는 소박한 헛간이 있었다. 모두가 말들로 채울 허공을 찾는다. 그 말들이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땅을 꿰뚫고 풀리지 않은 비밀번호를 풀고 무한을 형용할 것이다.
-P121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고집 센 송아지를 길들이듯 헤아릴 수 없는 투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부단한 노력과 정량의 희생 없이는 안된다.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는 독자라는 종족을 위하여 미래를 끌어오고 유년기를 다시 찾아가고 날뛰는 상상력의 어리석음과 공포에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P121
그것이 특별한 작품의 결정적인 힘이다. 행동하라는 부름. 그리고 나는, 번번이, 내가 그 부름에 화답할 수 있다는 오만에 무릎을 꿇고야 만다.
-P127
사물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내 호주머니에는 몽당연필이 들어 있다.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영민함의 얼룩이 하나도 없이, 우화처럼, 여러 차원에서 소통하는 작품을 쓰는것.
꿈은 무엇인가? 내 시행착오와 경솔한 행동 들을 정당화해줄 만큼 나보다 훨씬 나은 것, 뭔가 좋은 걸 써내는 것. 얼기설기 엮인 단어들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손가락이 촉침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질문을 추적한다. 젊었을 때부터 내 앞에 놓인 익숙한 수수께끼. 언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이와 친구들과 사랑의 계곡에서 한 박자 바깥으로 물러서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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