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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ordin님의 서재
  • 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 14,400원 (10%800)
  • 2018-05-04
  • : 2,520
생각해보면 나는 평생을 인정 받으려 애쓴 것 같다. 아이때는 착한아이로,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사회에 나와서는 성격도 좋고 능력도 있는 인간으로 인정을 받으려 애써왔다. 계속 그런 부담감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아주 착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우월한지에 대한 자각이 있었고. 그 기준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이 나쁜 습관은 지금도 계속된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도 않은 싱글의 나는, 한국 사회에서 볼 때 여러모로 열등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특히 행복을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한 듯 보였다. 심지어 사랑을 하고 받기에도 자격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점점 많은 실패와 낙방을 했다. 그 횟수가 쌓이자, 인생 자체에 낙방하는 것만 같았다.   장강명 작가의 르포, '당선, 합격, 계급'은 나의 답답함과 오랜 절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나란 사람은 왜 이렇게 부족하고 사회에 부적응하는 것일까라는 지겨운 질문에, 개인도 개인이지만 시스템이 문제일 수 있다는 의견을 여러 자료와 생생한 인터뷰로 제시한다. 장강명 작가는 '열정 금지, 에바로드'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읽고나서 주위의 많은 지인들에게 추천했던 기억이있다. 이 책 역시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 특유의 통쾌함 또한 있다. 유머감각과 함께! 
 내가 유레카를 부르며 자유를 만끽한 곳은 책 속의 세상이었다. 문학이라고 해야할까. 그 속에는 우월과 열등,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에 주목하고 심지어 그것을 넘나드는 것이 가능했다. 모호하면서 충만한, 자유로운 세계였다. 유일하게 나에게 방황을 허락하는 공간이었다. 나도 이 세계에 속하고 싶었다. 내가 노력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문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ㅠ.ㅠ)이 세계에 뛰어드는 데는 일단, 돈이 들지 않는다. 글을 쓰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볼 때, 기본 자금이 필요없다. 컴퓨터, 혹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홀로 습작을 하면서 종종 뜻하지 않은 벽을 만나곤 했다. 소설을 쓰고 있다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문예창작과로 다시 학교에 가라고 조언을 하는 사람이 적잖았고, 혼자서는 절대로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소설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나도 여러 공모전에 필사적으로 응모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겐 공모전이, 금전적 대가가 주어지는 유일한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인정. 공모전에 당선이 돼야 글을 잘 쓴다는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여러 공모전에 에세이나 소설로 응모를 해서 대부분 낙방을 했다. 운좋게 에세이로 당선이 된 적도 있지만, 소설은 매번 낙방이었다. 재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 좋았고, 어떻게든 쓰고 싶었다. 소설 창작 강의에 몇번 등록한 적이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등록한 강의가 모두 인원수 미달로 폐강이 되었다. 궁금했다.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 그렇게 적은가? 아니면 소설을 읽는 사람이 그렇게 적은가?
 꾸준히 해외 신작 소설에 관심을 갖고 구매하며 읽는 독자가 우리나라에 3,0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외국소설 팬층이 얇다고.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들은 말이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의 통계에서 보면 해외소설이 우리나라 소설보다 판매부수가 훨씬 좋다. 전국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대부분 자기계발서나 자가힐링심리에세이다.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서평만 봐도그렇다. 네이버 블로그 주제별 추천, 책 부분에 올라오는 서평의 대부분은 어린이 책이나 자기 계발서, 혹은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 사회가 너무나 빨리 정답과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책 속에서 아니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길을 잃을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내 자신을 틀에 맞추고 인정받기 위해 해야할 일이, 증명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그러면서 자괴감만 커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스템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길을 잃을 시간이 없고 , 그러기엔 용기마저 필요한 사회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볼 기회조차 잘 없는 것이다.   블로그를 하기 시작한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며 소중히하면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딜가나 부족하고, 자격이 없어서, 이러다가는 정말 나를 싫어하게 될 것만 같았다.  장강명 작가는 책속에서 말한다.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입니다. 이 공동체 구성원들은 좀 더 차분하고, 자신을 더 잘 성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  이제 시스템의 문제를 알았다. '당선, 합격, 계급'은 너무도 고마운 책이었다. 차근차근 그동안 나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준다. 아니, 자상한 선배와 술한잔하면서 고민을 상담받는 기분이었다. 글을 써서 뭐하게? 너는 그나이 되도록 정신도 못차리냐, 라고 핀잔주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민에 귀기울여주고 함께해주는 선배말이다.  정말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모든 시험과 공채와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따내고 인정을 받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이 시스템에서 살아 남는 길은, 그까짓것 별거 아냐, 라는 호기를 부려보고, 좌절은 짧게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길이다. 건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속지 않는 것이다. 내가 부족하다고, 너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지지 않는 것이다.  나를 그만 싫어하는 것이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남들의 인정은 중요치 않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다는 게 출판사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목록에 어떻게든 올라가는 게 중요해요. 그걸 못하면 명사가 추천을 했거나 상 이름이 하나라도 박혀 있어야 독자들이 책을 들춰 본다고 생각해요. 외국 소설도 들여올 때 상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따집니다. 상을 못 받았으면 ‘오바마가 휴가 갈 때 가져간 책‘같은 타이틀이라도 있든지 한국 독자에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당위성을 줘야 먹혀요. 그 당위성을 위해 문학상이나 명사의 권위가 필요한 거고요. 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책‘같은 독서 목록을 받아 왔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르는 것 같아요."
-p49

그렇다면 오늘의작가상을 개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제와서 공모전 방식을 폐지하나?
"그 제도가 타락했어요. 완전히 석화됐어요. 이제는 없애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의 문학이 너무 자기 자신의 중심인 소설을 쓰고, 시대정신이나 시대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내가 딴사람보다 조금 더 낫다는 게, 내 직감력이 낫다는 생각이 있어요."
-p78


예술가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술에 관한 책이 아니며, 나는 천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 낙선자들, 세상을 뒤흔들며 나오지 못한 신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6장과 7장에서 해 보겠다.
-p8

미국의 사회학자 토비 허프는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동양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인재 평가 방식의 차이에서 찾는다. 동양에서는 국가나 스승이 젊은이들의 능력을 평가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세운 기준을 충실히 다르게 된다. 반면 유럽의 대학에서는 일찍부터 논쟁과 토론이 발전했고 이는 체계적인 회의론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p102
1996년에 경제학자 아서 드 바니와 데이비드 월스가 1980년대 영화 300편이 어떻게 흥행했는지를 분석했는데, 결론은 ‘별 패턴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느 이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부편집장인 데릭 톰슨이 쓴 ‘히트 메이커스‘에서 읽었다. 대중문화의 메가히트작들이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지 과정을 분석한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 시장은 카오스 그 자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창의력이 곧 상품인 문화 사업은 확률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른바 ‘창의력 시장‘에 내재한 카오스 특성을 치유할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카오스를 이겨 내는 불굴의 투지와 끈기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p136
(...) 독서는 원래 우회적인 것이고 방황하는 건데, 우리는 거기에서조차 직선적인 정답, 단번의 명쾌한 해답을 요구하죠.‘
-p334

‘(...)자신의 취향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책을 재미로 읽지 않는 문화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을 억지로 공부하듯이 읽어서 취향이랄 것조차 형성이 안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p349
"(...)그래도 리뷰 많이 써 주세요. 저는 세상에 ‘읽고 쓰는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아마 다 그 공동체의 일원일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더 끈끈하게 묶여 있다고 생각해요. 고향 사람이라든가, 어느 대학 동문이라든가 하는 것보다 더. 그리고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입니다. 이 공동체 구성원들은 좀 더 차분하고, 자신을 더 잘 성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이 공동체가 지금 점점 규모가 줄고 있습니다."
나는 서평이 이 소중한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짧은 서평이라도, 그리고 악평이라도 그렇다.
"우선 서평은 작가들에게 ‘당신 책을 읽은 독자가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 소설가들이 응답 없는 벽을 바라보는 심경으로 글을 쓰고 있거든요. ‘출판사 편집자들 말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긴 있나?‘라는 막막함에 시달리다 좌절하는 소설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서평은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고, 움직일 힘을 줍니다."
-p372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모색도 종종 주류와 비주류의 대결이라는 틀에 갇히곤 한다. 비유하자면 ‘양반이 상민이 되고, 상민이 양반이 되는 사회‘를 상상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대단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시험 하나 통과했다고 뻐기던 놈들에게 설욕을 하고 싶을수록, 차별 대우 받고 업신여김 당한 서러움을 갚고 싶을수록 그렇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꿈꿔야 할 사회는 그런 구분 자체가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양반도 상민도 없어야 한다.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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