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하기 전 TV에 나오는 것은 헐리우드의 좀비영화 <월드 워Z>의 한 장면이었다. 원인 불명의 현상으로 전 세계 곳곳에 좀비 떼들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청정한 곳은 이스라엘 단 한 곳. ‘낌새’를 알아 챈 이들의 선견지명으로 인하여 주변에 높은 장벽을 쌓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성벽 안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평화는 ‘선량한 이스라엘인’들이 도와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하여 깨지고 만다. 성벽 안으로 들어온 팔레스타인인들이 기쁨에 가득 차서 자신들의 노래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마이크를 잡고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에 자극을 받은 성벽 밖의 좀비들이 자신들의 몸을 쌓고 쌓아서(?!!) 성벽을 넘어버린 것이다. 정의로운, 그리고 아직 어린 청년의 티를 벗지 않은 이스라엘 군인들은 성벽 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있는 수류탄의 핀을 뽑으며 희생을 하는데….
자,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사람들은 아마 “아.. 저 무식한 인간들, 괜히 성 안으로 들여보내 줘 갖고 시끄럽게 굴어서…” 이게 당연한 반응 아닐까? 어릴 적 보던 액션영화들도 그랬다. 아랍인, 소련인,.. 어쨌든 영어 안 쓰는 피부색이 어둡거나 인상 쓴 사람들, 국기 색이 유난히 빨갛거나 칼, 삽 같은게 그려져 있으면 평화를 파괴하는 테러리스트, 적(敵)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작가 조 사코가 1991년 말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두 달간 생활한 뒤 그린 아홉 편짜리 만화를 두 권으로 엮어 2001년 펴내었다가 2024년 개정판으로 낸 한 권의 책 <팔레스타인>을 읽으며 거실에서 들리는 영화 속 폭발음과 좀비의 비명소리에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작가 조 사코Joe Sacco는 1960년 몰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만화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코믹 저널리즘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 책으로 1996년 미국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사회정의를 위해 꾸준히 진실을 밝혀 온 이들에게 수여하는 라이든아워상을 수상했다.
2001년 7월에 이어 쓰인 2014년 2월 개정판의 서문은 말 그대로 아프다. 과거 시온주의 프로젝트에 대항하는 현재의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의 대규모 민중항쟁)보다 더 급박하고 더 난폭하게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 언론사를 휘어잡고 있는 것이 유대계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음은 당연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세계뉴스에는 진짜 현실이 비춰지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에서 가자지구 난민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의 포스팅을 더 열심히 보았더니 내 알고리즘에 영향이 갔는지 내 짤/릴스 리스트에도 그곳의 실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내용들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왜 2024년 하마스가 납치를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이 “너네 잘 걸렸다.”라는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정도 이상의 폭격, 파괴, 살상을 시작했는지…
작가는 자신의 인기와 명예, 수익을 높이기 위한 수단을 위해 마치 팔레스타인이라는 소재를 구하고자 난민촌을 찾아간 것처럼 냉소적인 어조로 그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존재하지만 숨 죽여 지내야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사각형의 틀을 벗어나 굵은 펜촉으로 그려진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들, 그리고 끊임없이 마신 것 같은 설탕이 잔뜩 들어있는 찻잔의 릴레이들을 보면 작가는 쉴 새 없이 그들과 틈 날 때마다 함께 했던 것 같다.
책 속에는 이유 없이 자신들의 땅과 집을 빼앗기고 내쫓겨야 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이스라엘에 유대인 정착이 합법화되면서 기존 팔레스타인인들은 군인들이 들어와서 나가라고 하면 그냥 쫓겨나야 했다. 내용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히다. 하루의 말미도 주지 않고 그냥 1시간 내로 나가라고 한다. 그래서 짐도 제대로 싸지 못하고 나가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착민들의 패악질도 보통이 아닌지라 그들이 별별 이유로 찾아와 총질을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때리고 심지어 죽인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이 끝이다.
나는 읽으며 속이 터져서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CHAPTER 3의 <양동이에 담긴 눈물> 편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읽게 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이 보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류인간, 아니 어쩌면 동물만도 못한 게 아닐까? (하긴, 난민촌에 폭격을 할 때 옥상에 앉아 샴페인을 터뜨리는 짤을 봤으니 말 다 했지..) 지난 5월, 5.18 광주민주항쟁을 그린 마영신 작가의 <아무리 얘기해도>를 라디오에서 소개했는데 그 책에서 본 계엄군에게 이유없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많은 시민들이 떠올랐다.
읽다 보면 울화통, 화딱지, 눈물, 분노, 억울함… 그런 감정들의 연속이다. 내가 최근에 접한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어린아이들의 눈빛에는 미소가 없는데, 정말 딱 그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지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대충 정리해보았다.
길을 가다 이유 없이 군인이 잡는다, 때린다, 잡아가고 집에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쫓기든 불도저도 밀어버리든 폭탄을 날리든 어떤 이유로든 내 집을 없앤다, 그래서 빈 건물에 노숙을 하거나 텐트를 치고 겨우 잠을 잔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어와 내 가족을 때리고 잡아가거나 죽인다, 아니면 폭탄이 날아와 다 죽는다… 운이 좋게 집에 산다고 해도 통금이 있어 오가는 자유가 없고, 스나이퍼에게 총살을 당할 수 있고 정착민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총질을 당할 수 있고 함부로 아랍어를 쓸 수 없고 기도도 할 수 없고 욕을 해도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이 벌칙으로 전기와 물을 끊으면 씻을 수도 마실 수도 없고 한 겨울에도 덜덜 떨면서 버텨야 한다. ….
이게 인간의 삶인가. 심지어 이스라엘인들은 범죄기록이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부려먹는다. 감방에 다녀온 이력이 있는 그린카드 소유자는 먹고 살기 고달파진다. 해외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 사방이 이스라엘을 적으로 삼는 중동국가 투성인데 나가서 테러리스트 교육을 받고 온다고 하여 허가도 하지 않는다. … 아 답답하다!
모스크에 기도하러 가는 할머니를 이유 없이 이스라엘 군인이 곤봉으로 패는 영상을 본 것이 작년 이맘때이다. 큰 충격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실을 국내방송으로 본 것이니 말이다. 아마 우리가 보지 못한 더 많은 영상들이 더욱 더 많이 있겠지. 책 속에서 인티파다, 해방전선, PLO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마음을 가졌던 시기가 12살에서 15살… 자신의 부모, 형제, 이웃이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받은 충격으로 작은 돌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나라도 내가 본 동영상 속 할머니가 곤봉으로 맞는 것을 목격했다면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악에 복받칠 것 같다.
작가는 돌을 던졌다는 이유로 등과 배에 총을 맞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와 10대의 아들을 잃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의 끝이 더 아프다. 자신의 죽은 아들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하던 여인이 아래와 같이 되묻는다.
"그녀는 자네에게 이야기를 한 게 그녀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를 알고 싶대. 돈을 원하는 건 아냐. 자신들의 땅과 인간적인 생활을 돌려받고 싶다는 거야." "우리도 사람이야, 안 그런가?"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문장은 군인들과 다른 유대인들의 욕설과 놀림에도 불구하고 작가에게 끝까지 가이드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의 말이다. 나는 이 문구를 종교의 시선으로 보기보다 인간의 탐욕도 결국 한 순간일 뿐이라는,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것 역시 신의 뜻이라고 본다면....
이 책의 2001년과 2025년 한국어 개정판을 옮긴 함규진 번역가 역시 책의 말미에 말한다.
---------------------------------------------------
- 조 사코는 이 개정판 서문에서 ‘기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수 천 년의 피학대자에서 수십년의 학대자로 바뀐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의 성서에 나오는 구절을 되새겨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것은 ‘희년’, 즉 50년마다 한 번씩 속죄의 뜻에서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고, 붙잡았던 노예를 해방하고, 서로에게 지은 잘못을 용서해 주던 유대인의 아름다운 전통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너는 일곱째 달 10일에, 사방에서 나팔을 불게 하라. 속죄의 날에, 너는 나팔을 네 온 땅 전역에서 불게 하여라. 너희는 50년이 되는 해를 거룩하게 하고, 그 온 땅의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것이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소유지로 돌아가고,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동족에게로 돌아가라.”
- <성서>, <레위기>, 25:9-10
이 구절은 늘 이스라엘의 편에 서 왔던 나라, ‘그 나라’의 독립과 건국을 상징하는 기념물인 ‘자유의 종’에도 새겨져 있다.
-----------------------------------------------------------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이후 네타냐후에게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며 가자지구에 트럼프 브랜드를 내 건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이빨을 깠다… 아…역시나 싫은 인간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역을 봉쇄하고 그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가는 것을 막고 있다. 지속되는 폭격으로 인해 남아있는 의료시설도 멀쩡한 것이 없는 데다 식량지원을 하는 트럭에 사람들이 배급을 받으러 서 있는 곳에도 총질을 해대는지라 그곳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기만 하다.
최근 48시간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기아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까지 해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제는 강한 자본의 눈치고 나발이고, 진실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은 인종학살을 하고 있는 것이다. #genocide
영국 배우 미리암 마고리스Miriam Margolyes (해리포터에서 스프라우트 교수 역할을 한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배우)가 양심적인 발언을 했다. 1941년생인 미리암 마고리스는 홀로코스트의 절정기에 태어난 유대인으로 자신과 같은 민족이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그대로 다른 민족에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이를 겪는 민족, 즉 팔레스타인인들은 홀로코스트와는 전혀 무관한 이들로, ..(중략).. 결국 이 모든 상황을 보면 히틀러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며 마음이 아프다고 씁쓸해한다.
책을 읽고 난 뒤 지구 반대편에서 한 때 남의 일인 것처럼, 그냥 안타까워하기만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외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동정하고 싸워야 한다.
내가 취한 액션은 친 이스라엘 기업을 보이콧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내 동생이 알려줬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큰 영향력을 불러온다. - 그 기업의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 그 프랜차이즈의 버거는 먹지 않는다 / 그 OTT의 서비스는 보지 않는다 / 그 브랜드의 옷은 입지 않는다.
당신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죠. 모두 흙에서 만들어졌죠.
로마, 비잔티움, 십자군, 튀르키예, 영국, 모두 이 땅을 차지했었죠. 지금 그들은 어디 있죠?
모두 사라져 버렸죠. 지금 소련은 어디 있죠? 사라져 버렸죠.
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건 하느님의 힘이지요. 오직 하느님 만이 위대하시다오.-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