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주간 내가 사는 강원도는 영하 15도를 찍는 한파가 지속되었다. 추위 탓인가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고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은 두꺼운 자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펭귄처럼 걸어 다닌다. 정말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 할 정도로 지겹게 눈이 오는 이번 휴일은 유난히 ‘남극스러웠다’. 비록 나는 남극에 가보진 않았지만 모든 것이 ‘빙.빙.빙(氷)’하고 춥고 펭귄이 주인인 그곳.
이런
날 남극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나의 폴라일지>를 읽게 되었다.
책은
총 4부 - <책, 커리어
그리고 천사들>, <작은 눈사람들의 세상>, <대기의
강>, 그리고 <명명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한겨레의 기자로서 약 한 달 간 남극
세종 기지에서 체류하며 그곳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취재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2부의 <식물수업> 부분에서 작가가 식생팀에 합류하여 생소한 식물/이끼류들의 이름과 함께 그 모양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에 반해 시각적 자료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2024년 #한겨레S 에 실린 글이 뜬다. 그 글에는 글과 함께 사진들이 실려 있어 내가
다시 식물을 검색하는 번거로움(!)이 조금은 줄어든다 (ㅎㅎㅎ) 그리고! 책의 부록에 사진일지가 실려있다. 놓치지 말 것!
…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남극에 갑니다.”
“그러면 여행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작가는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14쪽)”라고 말하며 극지연구소 취재차
그곳에 간다. 해상생존교육과 기초안전교육을 시작으로 인간이 ‘거의’ 없는 땅으로 향하는 준비가 시작된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작가는 “아주 완전한 행복감에 빠졌다. (44쪽)”.
남극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그곳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체류자들, 경험… 모든 것들이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읽으며 가슴 한 켠을 콕콕 찌른 건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TV를 보다 보면 ‘북극곰의 터전을 지켜주세요’라고 하면서 후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곤 하는데 환경 위기는 확실하지만 너무 먼 이야기 같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온난화의 극적인 진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 무심히 흘리는 작은 쓰레기 하나가 극한의 공간인 남극이라는 곳에서 어떤 도미노현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문장에 위압감이
느껴졌다.
“누구도 남극의 주인이 아니며 국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의 빙원은, 빙산은, 유빙은
‘국가’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행성처럼.” (14쪽)
가능하면
천연소재로 만들어진 옷과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자연의 흔적이 아닌 것들은 치워야 한다는 원칙을 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땅도 사실 인간이
발을 내딛기 전에는 남극과 같이 ‘순수한 자연 공간’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이
접근하기 어렵고, 설령 갔다 하더라도 나의 규칙을 내려놓고 그곳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그 곳. 같은 지구에 있지만 다른 행성의 일부가 놓여있는 미지의 세계인 남극은 마치 나에겐 바닷속 용왕 마냥 빙붕의
핵에 살고 있는 펭귄대왕님이 허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같다. 그만큼 그 곳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단해보이면서도 게임을 통해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여자 팀원이 늘어나면 화장실 청소를 맡을 사람이 늘어난다고 안도하는 모습에 인간미를
느낀다.
작가에게
남극이 꿈의 공간이었다면 나에게 그런 곳은 어디일까? 내가 만약 남극에 가게 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아, 출국하고 싶다!
"지금은 온난화가 먼일처럼 느껴지겠지만 한번 가시화되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순식간일 거예요. 바로 몇 년 후일 수도 있어요.
- P89
"어쩌면 내가 남극까지 간 건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 잘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형태의 ‘잘한 일’이 될 것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대륙의 흰빛, 푸른빛, 살아 있는 펭귄과 고래의 매끈한 검은빛, 그리고 붉은 기지복을 입고 발맞추어 걸어주던 사람들의 빛.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걷고 있으면 언제든 나는 나의 폴라 일지 속으로 들어갔다가 새로운 마름으로 한 발 걸을 수 있다. 그 재생과 순환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남극이 있다." -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