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베라는 남자'를 쓴 프레드릭 베크만의 새로운 책 “My Friends”, 우리말 제목은 “나의 친구들”이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속도가 정말 나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다. 소설인데, 인문학 책이나 자연과학 책이면 더디 읽어지는 게 이해가 갔을 텐데 왜 소설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한참 생각하다 삶의 곳곳에 멈추어 있는 주인공들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정말 멈추어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주 약간 다른 무언가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속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많은 나의 문제들을 아주 눈앞에 들이미는 것처럼 힘들게 마주 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책 소개를 보면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이렇게 생각하게 될까? 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모든 장면에서 걸리는 책을 만난 탓에 길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많은 곳에 마음을 딱 멈추게 하는 글들을 만났고 곳곳에 테이프를 붙여서 남겨놓느라 더디 읽었다는 긴 설명을 한 것 뿐이다.
이야기는 루이사라는 이제 막 어른이 되는 열 여덟살 여자아이가 ‘바다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품 경매장에 몰래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경매장에서 그림을 망치지는 않았지만, 펜으로 그림 옆 벽에 빨간색 물고리를 그렸고 스프레이를 가방에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쫓기게 된다. 도망치는 루이사가 골목에서 만난 한 남자를 만난 것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시작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루이사는 여전히 어딘가의 문을 따고 들어가 하룻밤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만간 만나자. 엄마가. 배낭에 담긴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엽서 앞면은 C. 야트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다. 루이사는 기억이 닿는 아주 먼 옛날부터 그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었고, 피스켄을 붙잡고 늘 그 얘기를 하며 나중에 같이 보러 가자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느낌을 말로 설명조차 하지 못하겠다. 가끔 피스켄과 함께 몰래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봤을 때, 엄마가 된 기분을 설명하려는 여자들이 그냥 감정에 북받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엄청난 파도에 강타당해 숨이 턱 막힌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중략)
루이사에게는 그 그림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무언가로 인해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이다. 루이사에게 이 그림을 보고 싶어했던 오랜시간의 갈망과, 실제로 보았을 때의 감동이 만났기 때문일까? 그렇게 만난 그림과 루이사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더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
“루이사를 찾아줘. 그걸 걔한테 줘.” 이렇게 말한 화가의 이야기 덕분에 루이사를 찾은 화가의 친구 테드. 루이사에게 C 야트가 선물한 그림을 주고 간다. 하지만 받는 것에 어쩔줄 몰라하는 루이사는 테드가 타는 기차에 같이 올라서 타고 가겠다고 기를 쓴다. 그리고 같이 기차를 타고 가면서 화가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주 긴 시간의 이야기를. 몇 년동안 함께 열 세 살에서 열 다섯 살까지 아이들이 쌓아간 시간 속 이야기다.
그래서 25년 전 6월의 그날, 잔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화가는 딱 하나밖에 없는 소원을 조그맣게 속삭였다.
“너도 같이 갈 수 있어? 여기서 도망치면?”
“나중에 놀러 갈게!” 요아르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짓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뜩 구름처럼 텅 비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런 약속을 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게 늘 맞고 있는 요아르의 아슬아슬한 생존, 그림을 그리는 재능을 완전히 펼쳐내기 어려워하는 화가, 지하실 방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내성적인 테드. 처음에는 이렇게 3명의 친구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한참 지나 같이 하게 된 여자친구 알리. 아슬아슬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온전히 모든 것을 내어주는 친구들.
갑자기 선명해진 우리의 기억은
살피고
곱씹는다
내뱉어지지 않은 다정한 말을
약속해 놓고 가지 않은 산책을.
테드가 죽어가는 화가와 마지막 시기를 보낼 때 읽은 시이다. 화가가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자기가 어렸을 때 그렸던 그 그림, ‘바다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경매에서 사기를 원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테드가 학교에서 아이로 인해 다쳐서 그만두고 화가와 함께 몇 년을 보냈고, 화가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그리고 화가의 소원대로 경매에서 엄청 비싸진 화가의 그림을 사고, 화가의 소원대로 골목에서 마주친, 그림에 대해 이야기 나눈 특이하고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그 여자아이 루이사에게 주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비싼 작품을 친구의 유언대로 루이사에게 주는 테드를 보면서도 한참 생각이 멈추었고, 그 그림을 자기는 받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그 그림을 좋아했던 루이사의 대답도 낯설었다. 하여튼, 그림을 주고 떠나려고 하는 테드를 따라가 같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테드를 통해 4명의 친구들이 보낸 그 시절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없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4명의 친구들이 각자 자기가 겪는 어려움들과 함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참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았다.
그가 그렇게 수줍게 말하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테드는 가만히 대답했다. 그는 요아르가 원하는 구절이 뭔지 정확히 알았다. 베타 레이 빌이 한 말이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면 형제들이여. 좋은 것을 만들어내자.”
요아르는 그 문구를 열심히 외우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행복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몫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천국도 믿었고 착한 사람은 영생을 누린다는 것도 믿었다. 다만 그가 그 중 한명은 아닐 뿐이었다. 그가 바라는 건 어머니의 안전과 화가의 성공 뿐이었다.
요아르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함께 하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간신히 버텨내면서 벼르고 있었다. 칼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지만 요아르는 결국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 칼을 없앤 어머니의 행동에 놀랐고, 또 그때 회사에서 다치는 바람에 완전히 자신을 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다음날 등교했을 때 나는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은지 밝히지 않았다는 걸 알 리가 알아차렸지. 그래서 그녀는 물었고 나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거짓말을 했어.”
“거짓말을 하신 이유가 뭔데요?” 루이사는 궁금해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울음이 터질까 봐 겁이 났거든.”
“원래는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요?”
“나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고 싶었어. 그럼 우리 엄마는 아빠를 잃지 않을 테고, 요아르는 아버지에게 얻어맞지 않을 테고... 그러면 내 곁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을 테니까.”
루이사가 비싼 그림이지만 자기가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 테드가 잠들었을 때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루이사를 찾아 내린 테드, 먼저 내린 루이사도 역에 있던 불량배들에게 크게 공격을 당하고 기차를 다시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차 안에서 만났던 인연에 의해 그림과, 짐을 다시 구하게 된다. 다만 화가의 뼈가 담긴 상자만 잃어버린 채로.
“그 친구 없이 나 혼자 거기서 살 방법이 없었을 거야. 밤새 뜬눈으로 그 친구가 들어오길 기다렸을 테니까. 달걀을 먹는 사람이 그 친구 혼자라 달걀을 전부 버려야 했겠지만 깜빡하고 다시 샀을 거야. 그가 세상에 없다는 걸 노상 깜빡했을 거야. 욕실 불이 꺼져 있는 걸 보고 화가 났을 거야. 왜냐하면 전에는 그 친구가 계속 켜놓아서 짜증을 내곤 했거든. 그 친구의 신발과 셔츠를 전부 보관했을 테고 봄이 찾아와서 꽃이 피면 화를 내면서 싫어했을 거야. 꽃 향기에 그 친구의 마지막 체취가 묻힐 테니까. 발코니에 항상 2인분의 식사를 차렸을 거야. 팝콘을 나 혼자 먹어치워야 했을 거야. 무슨 영화를 볼지 절대 고르지 못했을 거야.”
화가를 보낸 테드의 마음이 어떤지, 루이사는 친구 피스켄을 보낸 경험이 있었으니, 너무 잘 이해했을거다.
“그 친구는 그 해골을 계속 그렸어. 그러면 자기 손끝에서 크리스티안이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쩌면 너도 그럴지 모르겠네. 예술은 다른 사람들에게 남기는 우리의 일부분이니까.”
루이사는 같이 길에서 생활하던 하나뿐인 친구 피스켄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으니까.
“며칠 밤이 지났을 때 막 해가 뜰 무렵 도서관 청소부가 출근했다. 그녀가 동화책 사이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피스켄을 발견했다. 위탁 가정에 연락한 경찰이,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이지만 잠을 자다가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전했다. 그녀의 몸은 당겨쓴 행복으로 가득했다.”
25년 전 4명의 아이들이 작교에서 지내는 몇 년간의 이야기 속에서 아슬아슬하지만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화가가 강과 함께 아이들을 그린 그 그림이 바로 ‘바다의 초상’이라는 작품이었으니까. 자기는 빠진 채 3명의 아이들만 보이는데, 아이들이 너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자기는 나머지 모두라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다른 친구들이 화가의 그림을 공모전에 내보내서 1등이 되게 하려고 기를 쓰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 공모전이 13세 이하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픽 웃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서로 위하는 모습이 너무나 필사적이어서 정말 아슬아슬해 보이기만 했다.
늘 때리는 아버지를 죽이고 무언가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요아르. 죽은 줄만 알았는데, 테드와 루이사가 기차에서 내린 후 찾아간 것은 바로 요아르의 집이었다.
“너를 잊는다고?” 테드는 중얼거렸다. “네가 등장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걸? 우리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
그녀는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있다가 약속했다.
“나는 너희를 믿어. 앞으로 너희 셋을 믿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다시 믿을 일은 없을 거야.”
“나도” 테드는 말했다.
“나도” 킴킴은 말했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요아르가 말했다.
“멍청한 건 너지.” 알리는 말하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요아르의 방 바닥에 그렇게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런 다음 킴킴의 그림을 액자에 넣었다.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된 알리와의 마지막을 보내는 이야기다. 그렇게도 킴킴, 화가를 아끼던 요아르와 다시 만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는 참 어려웠다. 하지만 만나지 않았어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 떠난 루이사와 테드의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마지막 그림의 방향은 이야기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그 비싼 그림을 가장 필요한 곳에 두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화가가 인정한, 자기 그림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잠깐 마주친 아이 루이사는 그림을 그리는 길을 가게 된다.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가는 과정이 참 어려웠다. 일생에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은 몇 년 뿐이었고,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이 있던 과정 속에서도 그 4명이 함께 한 2년의 모든 기억들은 너무나 소중하게 그들의 삶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붙잡고 있었다.
문득 물어보게 된다. 나에게도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이 있는지, 그리고 함께 한 시간들이 평생 가져갈 만큼 소중하게 남아 있는지. 어쩌면 삶을 빨리 마무리한 화가 킴킴이 불행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도, 학생으로 인해 죽을 뻔 했던 탓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테드가 다시 교도소에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것도 모두 친구들이 마음을 지키고 있어서였던 게 아닐까 싶다. 참 길게 책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을만한 책을 만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살짝 미소짓게 된다. 책 속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마음 곳곳에 오래 남아서 한참 누르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