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정말 좋아했다. 모든 편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처음 1권씩 계속 나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들고 실제로 문화유산을 구경하면서 여행을 다녔었다. 친구와 다녔을 때도 있었지만, 혼자 문화유산들을 찾아다녔던 기억도 있다.
그런 유홍준 교수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오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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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제목을 보면서 문화유산 답사 대신 인생만사, 모든 삶의 조각들이 닮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글 하나하나에는 유홍준 교수의 생각과, 겪었던 일들과, 그 일들에 엮인 사람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쩌면 삶을 닮고 있다는 말이 더 맞을까? 그래서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제목을 달았나보다.
내가 ‘답사기’라고 해놓고 이 소리 저 소리 다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런 잡지와 잡문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에 나의 산문집을 아예 ‘유홍준 잡문집-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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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 속에는 사람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아는 사람도 있고, 처음 듣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참 따뜻했다. 어떤 마음인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작가의 시선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영감, 인자 그만 보고 가십시다. 오래 본다고 아요? 다 배움이 깊어야 아는 법이제.”
“자네는 꼭 날 무시해야 쓰겄는가? 모르긴 뭘 몰러?”
“그라믄, 이것이 뭐다요?”
“뭐긴 다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지.”
천연덕스러운 이 할아버지의 해설 앞에 나는 미술 평론가로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고단했던 삶과 그 삶속에 함께 했던 술과, 그 술기운에 실어왔던 꿈과, 그 꿈의 허망을 모두 읽어냈던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 중 2천여개의 맥주병 위에 빈 배가 올려놓아진 작품을 보고 한 할아버지가 했던 말에 대한 작가의 말이 기가 막혔다. 어쩌면 나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이 다른 것들을 ㅏ 읽어내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100년 뒤 지정될 국보, 보물이 있는가]라는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정말 고려, 조선 시대의 수많은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많은데, 지금 우리가 만들거나 손대는 것이 국보나 보물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하니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에 훗날 명승으로 지정될 정원, 원림, 별서, 정사가 지어졌는가? (중략)
부동산 파동의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아파트가 현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택에는 그런 환급성이 없다. 그렇다면 규제를 풀어 주택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아파트값 파동을 막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하고 과감하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의 본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3장 답사 여적의 백두산 답사를 읽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소원 중 하나가 백두산에 올라가 보는 일인데, 아직도 실행을 하지 못했다.
접대원이 다가와 우리가 감자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틀 묵어가는 동안 이집 감자요리를 다 먹고 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접대원은 가당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욕망이외다.”
“욕망이라니요?”
“우리 식당엔 감자요리가 여든 두 가지 있습니다. 감자 찰떡, 감자 묵, 언감자지짐, 농마지짐, 막가리지짐, 막가리국수, 오그랑 죽…….”
유홍준 교수는 이 이야기 뒤에 자신이 가보고 싶은 수많은 북한의 유적지를 이야기한다. 삼지연 배개봉려권에 다시 가보고 싶고, 황초령과 마운령의 진흥왕 순수비도 가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정녕 ‘욕망’이 아니길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걸 다 해보고 싶은 것은 욕망이라는 북한의 접대원의 말이 참 머리를 띵 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통일에 대한 욕심이 그냥 욕망이거나, 또 욕망이 아니면 어떠한가? 그냥 이루어지면 좋겠고, 그래서 저 많은 북한의 유적지를 한 번이라도 밟아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일본답사후기 : “머리부터 꼬리까지 앙꼬”] 편에서는 이 말이 오래도록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하고 있다.”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이 가진 그 콤플렉스 때문에 서로 함께 해야 하는 두 나라가 참 많은 문제를 안고 가고 있지 않은가? 과감하게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시원했고, 한편으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나온 ‘나의 글쓰기’에 대한 글도 많은 생각이 오가게 만들었다. 모두 글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테지만,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이나, 시험답안지, 김지하가 작가의 시에 대해 쓴 장문의 답장 등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있는 것도 새로웠다.
유홍준 교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글을 읽고 나서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참 쓸모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을 읽었다면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될 일이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작가의 또 다른 삶을 만난 것도 반가웠고, 여러가지 생각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런 책은 정말 천천히, 하나씩 오래오래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잡문집이라고 쉽게 빠르게 읽으려고 했더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구 부딪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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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장에 꽂아 두었다가, 한 번씩 그냥 읽고 싶은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의 인생만사 답사기에 나도 하나씩 발을 떼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