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완간 30주년을 기념해 나온 시리즈 개정판을 좋은 기회로 읽게 됐습니다.
17,18권을 읽었는데 전편을 읽지 않아도 크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없지만 시리즈물인만큼 웬만하면 앞권부터 읽는 것이 책의 흐름을 더 깊게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7권인 [욕망의 땅]의 주요 줄거리는 슈루즈베리 수도원과 호먼드 수도원이 서로 땅을 교환하기로 하면서 해당 땅을 개간하던 슈루즈베리 수도원의 인물들이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수사들이 해당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최근에 나온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처럼 엄청 섬뜩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반대로 따뜻함이 담겨 있는 깊이 있는 문장들과 캐드펠 및 주변 인물들의 인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보다 인물들의 대화나 생각에서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던 인물은 라둘푸스 원장이었습니다.
교단에 남을 것인지 수도복을 벗고 밖에서 살 것인지에 대한 삶을 고민하는 설리엔에게 라둘푸스는 강요나 회유가 아닌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른 어느 때보다 맑은 머리가 필요한 이 시점에 그에게 더 깊은 어둠과 충격이 닥쳐와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뿐이오."
"기꺼이 형제를 놓아주겠소. 형제가 머물기로 결정했다면 나로선 기쁜 일이겠으나, 이 선택이 형제 자신에게는 더 좋을 것이라 믿소. 세상도 형제를 반겨줄 거요. 자, 가시오. 허락과 축복을 모두 내리니, 마음 기우는 곳에 가서 주님을 섬기도록 하시오."
종교 없이 살아가는 저에게 있어서 종교, 교리 같은 것들은 항상 멀게 느껴졌고, 어떻게 보면 그들의 사상을 강요한다고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라둘푸스 원장의 포용력있는 대사를 보며 참된 길을 가는 사람, 진정한 어른은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작품에서는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답게 그 시대 특유의 비유나 표현력이 돋보이는데 작가님의 글솜씨가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찬란한 일출이 남긴 엷은 금빛 꼬리들이 여전히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드넓은 창공 밑에서, 두 사람은 설오를 가로막는 영광의 베일 없이 비천한 보통의 인간으로서 그렇게 서로 마주쳤다.]
[라둘푸스 원장을 바라보는 열의에 찬 눈빛이 얼마나 강렬하게 반짝이는지, 창으로 새어 드는 햇살은 그 기쁨의 반사광에 불과해 보일 정도였다.]
일출, 햇빛 같은 빛에 비유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찬란한 금빛 태양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남기겠습니다
[도나타가 눈치 빠르게 대꾸했다.
"그러지 말고 말해봐요, 휴.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유도의 방책 너머에서 부는 신선한 미풍을 나한테는 한 줄기도 맛보여주지 않겠다는 겁니까? 내 아들은 날 베개 속에 싸놓으려 들지만 당신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비교적 초반에 나오는 대사인데 가리고자 하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있고,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 귀와 눈을 막는 것만이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님을 꼬집는 대사였습니다. 그걸 신선한 미풍으로 표현하는 작가님의 섬세한 표현력이 감탄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쩌면 진실을 평생 모르고 살아야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