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도 친구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이제 다신 조제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겨울이었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시점은. 발에 물집이 잡힐 만큼 걷고, 또 걸으며 그녀에 대한 생각들을 꾹꾹 밟았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덜 밟으면 끈질기게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처럼, 정성들여 으깼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거의 성공했을런지도 모른다. 산에 무턱대고 올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렸던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산에서 겨울밤을 보낼 뻔 한 이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무작정 다시 연락을 해서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나는 너를 보고 싶다' 로 요약되는 말을 했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말쑥하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장까지 입고, 그녀를 만나러 기차를 탔다. 올라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저 뜨문뜨문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하지만 - 분명 그때의 나는 절박했었던 것 같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발로 밟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헤어지고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그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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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을 서면서 추천영화 목록을 하릴없이 보고 있다가, 우연찮게 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일하는 도중이라 뛰엄뛰엄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어느 순간 집중해서 볼 수 밖에 없었고, 로맨스 영화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중이다. 여보, 나 영화를 보는데 아무래도 이런 영화는 당신이랑 꼭 껴안고 봐야 되는 것 같아. 이러니 저러니해도 난 배드앤딩은 싫다. 우는 것은 더 싫다.
그간 있었던 일들이 어찌 한두마디 말로, 글줄로 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인생에는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바뀌고 변화하는 듯 싶어도, 그리고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잠깐 딴 생각하다가 주위를 돌아보면 다시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나는 몇 번이고 근무처는 바뀌긴 했으나 병원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고, 책은 조금도 보지 않으며,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다. 쉬는 날이면 그저 집에서 아내랑 심해 바닥을 굴러다니는 한 쌍의 조개처럼 데굴거리며 굴러다닐 뿐이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헤어지고도 친구로 남을 수 없으니까
가끔은 정말로 궁금한 듯, 나에게 묻는다. 그때 왜 나를 잡았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웅얼거린다. 사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일지 나는 전혀 몰랐다. 내가 정말 힘들어서 진창에 빠져 있을때 내 손을 부여잡고 '당신, 계속 타지생활하느라 부모님 제대로 못뵈었잖아. 내가 당신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을 드릴께' 하며 고향으로 같이 내려가주리라는 것을 당신을 잡을 때는 미처 몰랐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저 웅얼거리다가 난 당신을 잡을 때 알고 있었노라고, 당신이 똑부러지는 똑순이라는 것을, 하고 얘기하면 삐죽이면서 재활용이라도 좀 버리고 오라고 투덜거리지만, 이윽고 배시시 웃으면서 나도, 당신이 나를 잡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아니 왜 자신을 더 빨리 잡지 않았냐고 떼를 쓰는 모습에 다시 웃는다.
삶이란, 몇 번의 변주끝에 결국에는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조제는 누군가 밀어주는 수레가 아닌 전동휠체어도 타고, 혼자서 생선을 구워먹는다.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비슷한 생활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 생활이 살아지는 것은 아무리 비슷할지라도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리라. 깊고 깊은 심해에서 굴러다니는 조개는, 어두컴컴한 동굴 깊은 곳에서 그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야수는, 몇 십광년 너머에 홀로 반짝거리며 차가운 우주를 유영하는 항성은, 얕은 바다로 올라오고, 따뜻한 모닥불 근처에서 머물고, 쌍성을 찾은 뒤에는 다시는 원래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아니, 그래서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살아지는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제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