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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쯤이면 스포일러가 퍼질대로 퍼져서, 추도사를 몇 자 끄적거리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기어코 이 인터넷 한 구석 귀퉁이에 몇 바이트를 빌어 이렇게 애도를 표한다.

 

제라툴. 네라짐의 정신적 지주이자, 뛰어난 암흑 기사로, 신과 같은 12등급 초능력을 가진 캐리건의 날개를 베어버리기까지 한 근접전의 명수. 하지만 그의 삶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었으니, 그들, 네라짐의 고향 아이어의 파멸에 사실상 직접적인 관여를 했다는 죄책감과 네라짐의 수장이었던 라자갈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사람, 아니 보통 프로토스였다면, 아무리 프로토스가 테란보다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등에 얹힌 죄책감과 의무를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을텐데, 그는 툭툭 털고 전 우주의 파멸을 막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던 바, 결국 유지를 아르타니스에게 남겨 프로토스 종족을 대통합과 아이어 탈환을 이루어내었으니, 이 업적은 결코 오버마인드를 분쇄한 태사다르에게 뒤지지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엔 타로 제라툴.

 

 

 

...

 

 

 

드디어 스타크래프트 2의 마지막 확장팩의 발매로 스타크래프트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제라툴이 사실 사망 플래그를 너무 많이 꽂아놓아서 죽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예상과 실제는 역시 체감하는게 다르다. 살짝 공황상태에 빠질 뻔, 풋. 추도문은 반 농담식이긴 하지만, 아마 나처럼 애도를 마음 속으로 표하는 사람들이 분명 없지는 않으리라.

 

거슬러 올라가면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던 때가 거의 초등학생때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게임자체를 안하지만 - 게임 자체를 안할 뿐 방송을 안본다는 말이 아닙.. -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눈빠지게 컴퓨터 학원 가는 시간만을 기다렸는데, 그 학원에서는 하루 공부량을 다 채우면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도스 게임도 많이 했지만, 스타크래프트도 깔려있어서 스타도 꽤 오래 했었는데, 당시 내 주종목은 테란이었다. 사실 랜덤으로 아무 종족이나 닥치는대로 했었는데, 그나마 내 스타일에 들어맞는게 테란이었다. 실력은 그럭저럭? 냉정하게 지금 생각해보면 결정력이 없었다. 적 병력보다 내 병력이 많아도 한꺼번에 공세를 취할 줄 몰랐으니, 그러다보면 쉽게 이길 것도 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스토리였는데 학교에 설정집을 혹시나 가져온 사람이 있으면 옆에 붙어서 같이 설정집을 읽었고, 프로토스 언어 몇 마디를 알게 되면 바로 써먹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너무 빨라서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게 쉽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그런 기묘한 언어와 용어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특히나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아콘과 다크 템플러, 젤나가, 다크 아콘이었는데 모두가 남자의 로망을 한 곳에 구현해둔 것 같은 그런 멋진 캐릭터들이다. 특히나 다크 템플러, 암흑 기사는 강한 공격력, 은폐, 어둠이라는 그런 중학교 2학년스러운 느낌까지, 뭐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는 최고의 망상감이었으니, 그 다크 템플러의 수장 제라툴은 어떻겠는가? 다만 아쉬운 부분은 공중 공격을 못한다는 점이었고, 그래서 어느덧 내 마음 속 최강 캐릭터의 자리는 태사다르/제라툴 이라는 아콘 영웅이었다.

 

어린 시절에 저런 영웅들만 잔뜩 모아서, 겨우 눈동냥으로 맵을 만들어서 나혼자 영웅대전을 했었는데, 그 시점으로부터 너무나 많이 시간이 흘렀고, 이윽고 그 인기 캐릭터의 죽음까지 보게 되었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캐릭터의 생사야 게임제작사에 달린 것이고 - 그 셜록 홈즈 또한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살아났기에 - 그러니 게임제작사에 제라툴님 살려주세요, 라고 징징대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풋, 그보다는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여기서 매듭지어지는 것만 같아서 아련한 기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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