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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님의 서재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 19,800원 (10%1,100)
  • 2025-04-11
  • : 7,697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지난 해 작고하신 홍세화 선생님이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1970년대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저자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중 파리 지사로 발령을 받고 떠났는데, 이후 '남민전 사건'이 터져 파리에서 정치적 망명을 하며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당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였던 택시 운전을 선택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과정과 함께 택시 기사로 일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조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기억들과 뒤섞여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나 1980년대 파리의 풍경뿐 아니라 이념적 충돌로 인해 경직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모양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 교과서나 책에서만 보았던 나로썬 그 당시의 풍경을 조금 더 생생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의 서장이 상당히 흥미롭다. 마치 투어 가이드가 나의 손을 잡고 파리 전역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을 소개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파리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준다.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오프닝의 홍세화 선생님 버전 같달까..


이방인으로서 머나먼 타지에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으로 어디서든 한식집이나 한국 식료품점을 찾을 수 있었던 요즘과 달리, '꼬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아갔을 이방인의 고독함이 어떠했을지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게다가 당시의 한인 사회는 더더욱 폐쇄적이었고, 그 속에서 '빨갱이'로 낙인 찍혀 배척당했기에 '삼중적 이방인'으로서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저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방인이 베푸는 사소한 친절에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친절은 '똘레랑스'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똘레랑스'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사실 나도 '똘레랑스'를 전부터 많이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 단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리를 가장 최근에 방문한 것은 2019년 여름이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 중 많은 경우에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 파리에선 좁은 골목길에서 주차할 때 앞뒤 차량의 범퍼를 밀어대며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며 과하게 질서정연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살기에 꽤나 좋은 곳일 거라 막연히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문화도 '똘레랑스'로부터 뻗어져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금의 흠집이나 충돌은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서로 간의 불편을 일정 수준까지는 너그러이 감수하며 살아가는 태도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랑스식 똘레랑스가 일상에 스며든 방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가치이며,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프랑스인들의 일상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반면 우리 사회는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사회를 일구어 냈다.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짓던 조상들의 집단적 생존 방식이 사회 깊이 스며든 것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식 똘레랑스를 지구 반대편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물론 홍세화 선생님이 살던 시절보다는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이 한층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다름’에 대한 여유와 ‘실수’에 대한 너그러움이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그런 오늘의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곰곰이 되짚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빠리에서 나에겐 경계와 불신과 무관심의 시선밖에 없었다. 그 중에 프랑스인들이 보내는 무관심의 시선이 가장 따뜻한 것이었다. 내가 이른바 프랑꼬필르(francophile, 프랑스를 좋아하는 사람)가 되었다면 그것은 한편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 P81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 P374
프랑스의 개인은 권력에 대해 똘레랑스를 갖고 있음에 반해 한국의 개인은 똘레랑스 없이 다만 권력으로 강제되고 희생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권력은 사회와 역사에 책임을 지는 데 반해, 한국의 권력은 그 현대사가 증명하듯이 역사나 사회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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