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 작가님의 그림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 때부터 귀엽고 호감이 가는 그림체 속에 담긴
알 듯 모를 듯 모호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마음을 끈다.
이번 <달의 상자>는 전보다 더욱 과감해진 인상이었다.
사실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한 번에 와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했다.
이번 <달의 상자> 역시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비해 비교적 선명해진 느낌이다.
선명해진 만큼 보다 에로틱하고, 보다 잔인해지기도 했다.
김달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대체 어디에서 끄집어내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없는 달의 뒷편에서 전해지는 얘기는 아닐까?'
이런 허황된 상상마저 든다.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다. 그런 상상력을 그림으로 구현해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작가도 대단하다.
이번 1권 중에 마음에 드는 몇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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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달릴 줄 아는 건 만주인 여자에게도 중요한 자질이죠.
걱정하지 않아도 공주는 완벽한 신붓감이에요."
[2화 공주_21p]
공주의 미묘한 표정이 포인트.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디테일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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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아주 중요한 거예요. 트리어 씨를 '며늘아기'라고 부른다면
난 분명히 당신을 '아랫사람' 취급하게 되겠죠."
[7화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_101p]
판타지에나 존재할 법한 시어머니이지만
작가의 이상을 살짝 엿본 듯한 기분이 든 장면이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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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간은 구려요. 나무늘보가 최고입니다."
[9화 용의 불면증_130p]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물씬 묻어나지만
가장 귀여운 장면 중 하나. (나무늘보는 최고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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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말이지... 남의 일일 때 즐거운 법이야...."
[11화 연서_163p]
아, 잔인하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
김달스러운 장면이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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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만은... 그 질문만은 대답할 수 없어요."
[13화 누르 자한_189p]
누구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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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아이를 먹으면 전혀 안 무서워지겠지요?"
"앗. 그건 아님. 난 300년 살았지만 아직도 무서운걸."
"정말요?"
[14화 요리사_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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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꼴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무지 힘들 거야.
음.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가겠지."
[18화 마법사의 질병_269p]
꾸역꾸역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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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18화 마법사의 질병_270p]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신비로운 이야기 모음집 2권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