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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계절 쓰기
  • 김연수 외
  • 13,500원 (10%750)
  • 2026-07-10
  • : 8,750

우리말에서 '철들다'는 말은 절기, 제철을 알고 산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계절의 순환을 알고 그에 맞춰 삶을 꾸려간다는 뜻이다. 계절의 순환을 안다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은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계절의 순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조상들은 은연중에 넌지시 암시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자연의 순리를 어느 정도 깨우친 듯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미 생을 마감할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농사를 짓던 조상들도 이럴진대 계절의 변화를 사무실이나 거실 유리창을 통하여 감지하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럼에도 계절의 변화를 남들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계절이 교차하는 그 순간의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매번 우리는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같은 둔감하고 탁한 느낌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익숙함이란 결국 죽음과 같은 것이다.


"요새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50년을 살았는데, 다음 해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처럼 많이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인지 모른다. 나이 든 사람은 닥쳐오는 어두운 겨울을 애써 들여다보는 대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이 가을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서 아직 어린 것들을 거두어 건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p.41)


소설가 김연수 외 7명이 공동 집필한 <계절 쓰기>는 각각의 계절에 대해 두 명씩 나누어 씀으로써 사계절을 아우르고 있지만, 글쓴이의 구성이 모두 문학가는 아니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분히 '아, 이제는 인류학자도, 식물분류학자도 계절을 사는 일에 민감해졌구나.'라는 생각에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이와 같은 변화가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과거에 알던 계절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계절의 모습도, 계절이 찾아오는 시기도, 계절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멈춰 선 게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정원의 가구에 녹이 슬고 있다. 겨울을 맞아 치워두는 것을 잊은 것이다. 나무들이 뼈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공기에 불 냄새가 감돈다. 온갖 영혼들이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장미들이, 아직 장미들이 있다. 습기와 한기 속에, 생명이 사라진 듯 보이는 덤불 위에 활짝 핀 장미가, 아직 있다. 저 색깔 좀 봐."  (p.118)


우리는 점점 모호해지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를, 두 계절 또는 세 계절이 한 계절에 중첩된 듯한 낯선 계절의 이미지를,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여름에 겪었던 혹독한 더위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고, 어쩌면 올여름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히말라야 빙하마저 녹게 했고 네팔 대홍수와 같은 처참한 재난을 겪게 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계절에 예민한 작가와 학자들로 하여금 예전과 달라진 우리의 계절에 대해 솔직한 느낌을 기술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  (p.24)


이웃나라 일본은 22일째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내가 사는 곳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연일 끈적끈적한 습도로 더 큰 더위를 느끼게 했던 여름에서 벗어나자마자 칼로 무를 자르듯 단칼에 습도를 끊어낸 느낌이다. 그렇게 이어진 건조한 날씨는 등산로의 크고 작은 물웅덩이마저 씨를 말렸고, 그 덕분인지 이맘때면 기승을 부리던 가을 모기도 올가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금세 보송보송한 피부로 전환된다.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불안의 싹이 움트는 것은 이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현상으로 진화했다. 기상이변을 두려워하면서도 우리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두 눈을 감고 있다. 편안함의 뒷면엔 우리의 불안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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