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당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진로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가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에 따라 작가 혹은 연주자, 사진작가나 화가 등 이른바 예술 쪽의 진로를 선택하겠다고 하면 "얘, 그걸로 밥이나 빌어먹을 수 있겠니?" 하는 식의 퉁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것도 면전에서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수모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사를 끝끝내 관철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꺾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술보다는 지식을 우선시했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법대와 상경대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공대나 예체능 대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과도하게 공대 진학 비율이 높은 지금의 분위기와는 저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이윤석 하모니시스트가 쓴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여전히>를 읽으면서 문득 나의 청소년기가 떠올랐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나 기성세대가 개인의 진로를 강제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상황과 개인의 의사가 무제한적으로 수용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윽박지르거나 강압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지는 않는 지금의 상황은 모든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전환점은 초등학교 시절 참가한 아시아 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찾아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만났다. 반음계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클래식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는 외국 연주자들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수소문 끝에 그 악기를 구했고 운명처럼 지그문트 그로븐의 음반을 만났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하모니카 소리에 나는 단숨에 매료되었다." (p.14)
훌륭한 연주자는 많은 연습을 통한 뛰어난 연주 테크닉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유명 연주자들의 인터뷰나 그들의 일대기를 다룬 자서전이나 평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훌륭한 연주자는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결정적인 건 내면의 성숙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윤석 하모니시스트의 산문집을 꽤나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 어쭙잖은 연주자나 음악가가 쓴 자서전 형식의 산문집을 읽어볼라치면 자신이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왔으며, 세계적인 지휘자나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몇 번을 했다는 둥 자랑 일색으로 꾸며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읽는 데 거슬리거나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감으로써 저자가 특별한 직업인이 아닌,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풀어내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게 했다.
"사실 이 글의 첫 문장을 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일단 첫 줄을 적고 나니, 그다음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연주와 달리 글은 나중에라도 돌아가 고치고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물론 끊임없이 수정하고 싶은 욕망이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고도 시작하는 용기다. 첫 소리를 내는 용기, 첫 문장을 쓰는 용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 그것이 연주를, 글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p.71~p.72)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노는 웬만한 집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악기였다. 반면에 기타와 하모니카는 비교적 많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악기였다. 나 역시 잘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하모니카를 간혹 불어 봤었다. 그럼에도 악기 연주에 영 소질이 없었던 나는 몇 번 만져본 것으로 그쳤을 뿐 연주자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저자는 국내에 전공조차 없던 시절에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노르웨이 음악원 하모니카 전공자로 입학하여 세계 무대의 심사위원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텐데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Part I. '선택의 발자국', Part II. '무대 위의 순간들', Part III. '마음이 닿는 순간', Part IV. '음악이 삶을 닮아갈 때'의 총 4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온 한 예술인의 삶의 궤적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겪는 사건 자체가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인 경우는 드물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라 믿었던 일이 시간이 흐른 뒤 성장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재해석되기도 하고, 지금 누리는 달콤한 행운이 훗날 나를 정체시키는 족쇄였음을 깨닫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즉 '마음의 조성'이다. 오늘 하루가 유독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마음의 조성을 살짝 바꿔보자. 당신의 오늘이 전혀 다른 음악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p.147~p.148)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던지 계절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라진 느낌이다. 그 바람에 감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 이 좋은 계절을 미처 느낄 새도 없이 감기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의 하모니카를 한 번만 불어보자며 사정사정해 겨우 건네받고는 가득 찬 침을 털어내느라 애를 쓰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감기가 옮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하모니카 하나로 온 동네 아이들이 각자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서툰 솜씨로 생각나는 동요를 온종일 연주하곤 했었는데... 하모니카 하나로도 온 동네 아이들이 종일 행복했던 그 시절이 언제였는지 하모니카의 떨리는 소리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그 시절에 듣던 '섬집아기'를 누군가 옆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다시 들려준다면 어떤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세 잠이 들 것만 같다. 그리움은 한낮의 꿈처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