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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경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생각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삶의 중심부를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말하자면 삶의 테두리를 의미도 없이 빙빙 겉돌기만 하다가 주어진 삶을 마감하는 까닭에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라면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살다 죽는 것이 매사에 노심초사하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전혀 경험해 본 바 없거나 그것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게 전부여서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구현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르바의 삶이 자유로운 삶의 원형 또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이런 얄팍한 지식으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로운 삶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어렵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남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조금 구질구질하기는 해도 말이다.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마음의 장소>를 읽고 있다. 시인이 쓴 산문은 한 꼭지 한 꼭지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짧고 단정하다. 전할 말만 남기고 기타의 군더더기는 모두 제거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이처럼 간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려하고 멋진 표현력 때문일 경우가 많다. 나희덕 시인은 나의 그런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는커녕 그 반대에 가까운데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계속하여 읽고 있다. 달콤한 과자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여 손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마음의 장소라는 게 있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남 강진에 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다. 그곳과의 인연은 꽤 긴 편이다. 십여 년 전 지인의 안내로 월출산 아래 멋진 동백숲이 있는 집터를 가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낮은 돌담과 작은 오두막이 있는 그곳에 이따금 혼자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 집터를 구입할 사정은 안 되지만, 마음으로는 그곳에 수없이 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p.190 '마음의 장소' 중에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한 편의 시가 고픈 것은 순전히 계절 탓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나처럼 뻣뻣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도 한 편의 시를 읽게 하는 걸 보면 '가을의 마법'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다. 서점 가판대에서 시집은 제법 인기 있는 코너였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유행 때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시와는 한참이나 멀어졌다. 계절을 핑계로 시집 한 권쯤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전히 계절 탓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간절히 시가 고픈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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