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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기억의 구름이 고난의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의식의 대지를 향해 한차례 거센 빗줄기를 흩뿌리곤 합니다. 메말랐던 의식의 대지는 그 비로 인해 한동안 습습한 과거 기억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과거 기억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작금의 초조한 현실과 뒤섞일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됩니다. 가빴던 호흡이 느려지고 그득했던 욕심도 조금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면 우리의 수명은 어쩌면 지금의 절반쯤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원리도 우리의 기억 체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겪는 고난의 능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억의 구름이 짙고 풍성하게 쌓일 테고, 언젠가 그 구름을 통해 소나기처럼 세찬 기억이 의식의 대지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말입니다. 김소연 시인의 여행 에세이 <그 좋았던 시간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합니다.


"겨울은 여름을 떠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아쉬워할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을 열렬히 그리워하는 밤. 성에가 낀 얼룩덜룩한 유리창을 보면서, 다음번 여름엔 소낙비가 내릴 때에 유리창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창 바깥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귤차를 마시다 안경알에 낀 성에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 여름의 냄새가 다녀간다. 겨울의 반대편에 여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  (p.179 '겨울에 꺼내는 여름' 중에서)


주말 동안 이어지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올해의 늦더위도 조금씩 수그러들 것 같습니다. 길고 길었던 여름의 터널을 비로소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홍수로 인한 네팔 재난의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이번 여름에 겪었던 더위와 가뭄이 가난한 나라의 참혹한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재난의 주범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선진국의 국민들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는 이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를 입은 네팔 주민과 사고를 당한 많은 외국 관광객의 유가족들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지고 언젠가 잊히겠지만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듯합니다.


아침에 잠깐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습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끈적끈적한 더위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어느새 에어컨의 리모컨을 손에 쥔 나는 께느른한 오수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비가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구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 여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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