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의 주변부에 있었을 때 우리는 여름이 하냥 만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더위의 중심부를 통과했을 때의 우리에게 여름은 무섭고 두려운 어떤 것으로 변해 있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삼시 세끼를 부모에게 의존하던 시기에 삶은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가볍고 시시한 것쯤으로 보였지만, 삶의 고비를 여러 번 겪고 난 중년의 어느 시기쯤에서 바라보면 삶은 마치 보따리를 풀면 풀수록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문제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나의 괴물 보따리쯤으로 여겨진다. 방희진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는 동안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간 듯 느껴지는 가까웠던 여름의 폭염과 그에 얽힌 몇몇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재질이 다른 조각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말이다.
"이름 아래 소개된 약력을 검지로 톡톡 치며 진영은 그렇게 말했다. 선망이나 비웃음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의 부지런함만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혜린은 갤러리 관장 외에도 미술평론가, 수도권 대학의 겸임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혜린의 글을 읽었다. 장 드뷔페의 아르 브뤼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진영의 말대로 평론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인용한 문장이 많아선지 현학적이고 난삽해서 요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p.110 '패치워크' 중에서)
방희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패치워크'를 포함하여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패치워크'에는 세 여인이 등장한다. 오정순이었다가 개명을 통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오혜린과 주인공인 나(이정선)와 진영이 그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 여동생인 진영은 짧았던 결혼생활을 접고 그림에만 매달려 대외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반면에 백화점 디스플레이어로 일만 하던 나는 번아웃이 왔고, 그런 나에게 다시 붓을 쥐어준 이가 진영이었다. 전시회 때문에 오혜린을 만났던 진영이 나의 전화번호를 오혜린에게 건네주었고, 오혜린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30년 전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무명이었던 김옥환 화백이 그의 화실에서 수강생을 모아 서양화를 가르쳤을 때 오혜린과 함께 그림을 배웠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사람은 내가 선물로 받았던 팔찌를 통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팔찌에 세 개의 다른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소유하게 된 배경이나 동기도 서로 다르지만. 마치 소재와 색상이 다른 각각의 원단처럼.
"뒤늦게 첫 소설집을 내며 기쁨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다. 의미를 따지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 책에 대해서도 뜻있는 뭔가를 자꾸 찾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얻지 못했다. 다만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첫발을 떼면서 호들갑부터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 용감하게 첫걸음을 내딛자, 이 책의 의미를 입증하는 알리바이로 그만큼만 주장하자 마음을 다졌다. 나중에는 나중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테지만."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은 대개 피할 수 없는 관계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삶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는 여러 감정과 회한 또는 결심이 주를 이룬다. 어느 소설이든 다 그런 범주에 속할 테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삶의 목표에 근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쓸쓸하고 덧없는 감정까지 말끔하게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고 가야 할 원죄라도 되는 것인 양.
"수진이 저녁에 돌아와 하려던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수진은 무사했을까. 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내 안의 피멍에 주먹질을 했다. 아이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죄다 퍼부었다. 경찰에선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내가 내건 현수막은 그해 가로수가 모조리 잎을 떨어내고 겨울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이면도로 가에서 저 혼자 펄럭였다." (p.179 '이불' 중에서)
지면을 적시는 비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높아진 습도 탓에 불쾌지수가 높아진 저녁, 군데군데 먹장구름이 떠 있는 하늘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다. 방희진 작가의 소설집 <패치워크>를 읽고 왠지 모르게 울적해진 오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내 삶의 보따리를 풀어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고만고만한 문제들이 울적해진 마음에 불을 붙일 듯하다. 노을이 번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