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등하던 폭염의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그렇다고 한낮 더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이따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겠습니다만 이제는 여름휴가도 대부분 끝이 나고 평일에는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나른한 루틴이 이어지겠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특별할 것 없는 심드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해야 하는 아들의 이사를 돕기 위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근처를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들은 그곳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했고, 그곳에서 어쩌면 남은 대학기간 2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계획하는 대로 차후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그곳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년을 계약한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피스텔 임대 계약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그곳에 직접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8월 3일에 임대 계약을 마친 아들은 그 사이에 에어컨 청소를 의뢰하고, 침대와 책상을 구입하고, 가볍게 청소를 하는 등 입주 준비를 서둘렀던 듯합니다. 승용차에 아들의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는 아들이 이케아에서 주문한 책꽂이며, 조립식 스탠드 조명이며, 베개며, 커튼 등 집에서 가져간 짐만큼의 이삿짐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울 요량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한 후 책꽂이를 조립하고, 커튼을 달고, 스탠드 조명을 조립하여 침대 곁에 두고, 짐 정리 후 나온 박스와 비닐을 모아 쓰레기장에 분리수거까지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의 유럽 여행 후일담을 듣느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진 동아리의 정기 사진전에 걸었고, 그중 두 점이 팔렸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있었던 신촌의 숙소에 비하면 상암동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주변에는 산과 공원 등 초록초록한 자연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가까운 식당을 가려고 해도 1km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할 듯합니다. 그곳에서 아들은 무척이나 건전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비비언 고닉이 쓴 <연애 시대의 종말>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고 있는 듯한데 비비언 고닉 역시 20세기의 문학작품에서 보는 사랑의 문제가 꽤나 심각하게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메러디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플로베르와 에마 보바리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이 바로 작가 자신이다. 다이애나를 찬란한 존재로 만들고 다이애나가 독립을 갈망하는 지적인 여성의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함으로써, 다시 말해 상황을 첨예하게 만듦으로써, 메러디스는 굴욕당한 무지한 자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잘 다가갈 수 있다. 그게 작가의 진짜 관심사이며 작가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p.25)
아침에 하늘 저편에서 보이던 먹구름은 이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은 온통 가을을 닮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무사히 살아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