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를 읽을 때가 더러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곤 한다. 소설을 읽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이다. 은유나 비유가 많지도 않은, 그렇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쓰인 단출한 인물과 사건 구성임에도 동화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그토록 쉽게 사로잡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고 문장의 표현이 직접적인 까닭에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소설은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반투명의 얇은 종이를 덧댐으로써 독자들에겐 그저 흐릿한 윤곽만 제공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지만, 동화는 그런 장치 없이 투명한 유리 저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까닭에 동화 속 주인공이 울고 있으면 나도 따라 훌쩍거리며 울게 되는 것이다.
"은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기도 합니다. 은하철도에 올라타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모두 갑작스럽습니다. 조반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바라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은하철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이처럼 『은하철도의 밤』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복과 슬픔,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우리는 이처럼 상반된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p.211)
이서희 작가가 쓴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는 PART 1 '함께할 때야 빛나는 것', PART 2 '진심의 아름다움', PART 3 '상상을 뻗어 자유로운 세계로', PART 4 '내 심장으로 마주하는 모험', PART 5 '우리의 성장을 닮은 이야기' 등 총 5부로 나뉘어 22편의 동화가 발췌되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정글북, 소공녀, 피터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닐스의 신기한 모험, 브레맨 음악대, 보물섬,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 등제목만 들어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유명 동화들이 작가의 안내와 해설에 따라 줄줄이 소환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기뻐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일에 조심스러워지며,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하던 감각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아직 좋은 곳일 수 있다고 믿던 작은 확신도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두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동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곁에 놓입니다." (p.4~p.5 'prologue' 중에서)
비록 이 책에는 작가가 가려 뽑은 동화 속 일부 문장들이 실려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그 문장들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동화가 한두 권쯤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느 가을의 언저리에서 홀로 남은 빈집을 지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읽었던 '정글북'이나, 할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조명도 없는 사랑방에 숨어들어 읽었던 '피노키오' 등 우리는 동화 한 편을 다시 읽음으로써 소중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박한 사회생활로 잔뜩 날이 섰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뎌지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렸던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004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세상에는 다리가 짧은 거짓말도 있고, 코가 긴 거짓말도 있거든. 네가 한 것은 코가 긴 거짓말이란다." (p.190)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수없이 잔금이 가는 듯하다. 날 선 표정에 질린 탓인지 사무실에선 농담이 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흐를 뿐이다. 침묵은 가히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닮아 있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를 각자가 겨누는 마음의 검이 마치 어느 영화의 광선검처럼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찌를 준비를 하고. 내가 읽은 동화 한 편이 광선검을 막아줄 캡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인가. 강한 햇살에 기운을 잃은 나뭇잎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