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서너 살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뜻일 테지요.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언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배우고, 같은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덕목을 갖추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가족 공동체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하여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언어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얼빠진 어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 얼빠진 어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성인들 중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진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동영상 쇼츠에 몰입하는 것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뒷귀가 어두운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꽤나 어렵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물며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나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권의 인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그는 아마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소위 정치비평가를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 중 뒷귀가 어두운 사람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까닭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간결한 언어로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소위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작자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거나 엉뚱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치원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은 없는 듯 보였는데 성인도 훌쩍 지나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그들이 그렇게 쉬운 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면 반드시 ~~한다'라는 조건문에서 앞의 조건이 완성되어야 뒤의 문장이 성립하는 게 당연한데 이마저도 무시한 채 뒤의 문장만 따로 떼어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인지, 만약 읽는다면 그 책도 저런 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동반하여 읽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문학평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김현(본명 김광남) 작가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의 381일치의 일기이자 유고로 남겨진 그의 저서 <행복한 책읽기>에서 작가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언어는 그 미숙함과 어리석음에 있는 듯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듯한 작자들이, 타인의 말도 해석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이 정치 평론도 하고 심지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