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숲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요했습니다. 과한 습기 때문인지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걷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거대한 한증막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많던 새들도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피서를 떠났는지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곧 덮칠 더위를 경고하려는 듯 참매미가 이따금 '맴맴' 우닐 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새들이 더위를 피해 멀리 여행을 떠날지라도 계절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뻐꾸기는 차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저편 하늘에는 까맣게 먹장구름이 밀려오는데 등산로 주변으로 눈부신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땀냄새를 맡은 모기가 앵앵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운동을 마친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숲의 고요가 아파트 현관까지 따라왔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새벽 숲의 고요를 떨쳐내고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고 있습니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제목처럼 우리는 이 여름에 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해묵은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갈무리할 것은 갈무리하고, 덧칠하거나 아름답게 꾸밀 것은 한 번 더 다듬어서 이제껏 버텨온 내 삶을 위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잇지는 않다는 거예요. 요즘에도 저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꿈.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고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찬거리를 무겁게 들고 와, 채소를 다듬고 물을 끓이고 도마를 씻고 또 칼을 닦아 정성껏 밥을 해 먹이는 꿈. 단 한 번이라도 할머니에게 밥을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자랑 같지만' 중에서)
장마철의 눅눅하고 퀴퀴한 하루하루가 불쾌지수를 높이는 요즘입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흐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한 방울로 어쩌면 보송보송한 하루를 선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