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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아코디언
  • 천명관
  • 16,200원 (10%900)
  • 2026-06-22
  • : 62,455

어떤 소설은 시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천명관의 신작 소설 <아코디언>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국전쟁 직후의 결핍된 시기를 어느 것 하나 거르거나 미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지금과는 천양지차로 달랐던 그 시대를 우리 앞으로 소환한다. 20세기 대한민국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면 '에이, 설마...' 하면서 그것을 단지 허구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실제 모습이었고, 모든 게 부족했던 까닭에 생존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시기였고, 그럼에도 이웃이나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주기도 했던 헌신의 시기이기도 했다.


"자신은 벽을 넘는 데 끝내 실패했지만 기어이 살아남아 벽 너머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들처럼 깡통만 한 꿈이라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동이의 머릿속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깜상과 연이, 자신의 아들로 삼았던 돈이, 아코디언을 물려준 홍이, 죽은 양 목사와 아미, 그리고 이젠 윤곽조차 희미해진 엄마의 얼굴......"  (p.294)


소설은 버스정류장에서 구걸을 하는 한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피난민을 태우는 부두에서 잡았던 엄마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 동이. 홀로 부산에 도착했던 동이는 엄마를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고아들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어른(양 목사)의 꼬임에 넘어간다. 양 목사와 아미를 주축으로 하는 앵벌이 조직의 숙소는 해방촌 산자락에 위치한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그곳에서 동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며 백화점 앞에서 구걸을 계속한다. 앞을 못 보는 연이, 걷지를 못하는 거북이, 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찬이, 미군의 포탄에 맞아 팔이 하나밖에 없는 깜상 등. 양 목사는 어느 날부터 아이들에게 일명 구름탄이라고 불리는 마약을 먹였다. 마약을 통해 아이들을 손쉽게 지배하려는 속셈이었다.


"언제부턴가 양 목사와 아미는 더이상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았다. 대신 약을 굶겼다. 그것은 밥을 굶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벌칙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약을 얻어먹기 위해 더 악착같이 양 목사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목에 올가미가 채워진 가마우지처럼 약기운에 취한 채 온종일 길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p.42~p.43)


동이는 숙소에 버려졌던 낡은 아코디언을 발견한다. 죽은 연이 할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했다. 교회 성가대의 피아노 반주를 했던 동이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덕분인지 절대음감을 지녔던 동이는 독학으로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다. 아코디언 연주가 손에 익으면서 동이는 노래를 잘 부르는 연이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동이는 그렇게 앵벌이 조직의 주축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판자촌 입구 도랑 옆에서 미국인 시신 한구가 발견되고, 양 목사와 아미가 형사들에게 구속된다. 갑자기 감시자가 사라진 앵벌이 조직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밤중에 난 화재로 인해 아이들 셋이 죽고, 거북이를 업고 나오던 동이도 화상을 입는다. 죽은 아이들을 묻어주고 아이들은 다시 동이를 중심으로 앵벌이를 하고 조금씩 돈을 모은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나 싶던 어느 날 사라졌던 양 목사가 다시 나타나고...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굴바위로 옮겨온 지 세 달이 지났다. 죽은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만친 아이도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빼돌렸지만, 이전처럼 대놓고 삥땅을 치진 않아 탄약통엔 차곡차곡 돈이 쌓여갔다. 집을 사는 것까진 몰라도 한동안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움막은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처럼 늘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래도 그들은 함께 밥을 해먹고 숨바꼭질을 하고 계곡에서 다 같이 목욕을 했다."  (p.154)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선 언제나 각자가 지닌 본능과 본능이 악다구니를 쓰듯 충돌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면의 선한 본능이 우리도  모르게 발현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서의 극적인 반전을 이끄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한 본능. 물론 누군가는 그것조차 외면한 채 끝끝내 지독한 악인으로 남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에 저항하여 자신의 목숨마저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선한 본능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다른 작품 <고래>가 워낙 탁월한 소설이었기에 그것을 능가할 만한 소설은 작가로부터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까지 일부러 그의 소설을 외면해 왔다. 그러다 우연찮게 읽게 된 소설 <아코디언>. 시대를 관통하는 극사실주의 소설을 씀으로써 그는 이제야 자신의 위치를 찾은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제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디딘 듯한 모습이다. 현실에 살을 맞닿은 채로 그는 이전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진 듯했다. 나는 앞으로 천명관 작가의 달라진 모습을 그가 쓸 앞으로의 소설에서 수시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품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오늘 그의 소설 <아코디언>을 읽은 보람이라면 보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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