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왔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처음에 목표했던 지점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직면했을 수도 있고, 예기치 않았던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근접했던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기억들을 한두 개쯤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한 여운과 아쉬움을 삭이면서 말입니다. 평소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운동선수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사례는 종종 목격되곤 합니다. 프로 데뷔를 앞둔 시점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도박이나 성범죄 또는 음주운전과 같은,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범죄에 연루되는 바람에 결국 목표로 하던 꿈이 좌절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의 꿈이나 목표를 향해 달려왔건만 그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또는 피곤을 무릅쓰고 장거리 운전을 하여 곧 집에 도착하려던 순간, 불의의 사고나 뜻밖의 소식으로 눈앞에서 그것을 놓치거나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건 어쩌면 당사자의 긴장감이 풀어졌거나 이미 목적지에 도달한 듯한 착각 속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어떤 사건이 발목을 잡는 경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예정에도 없던 인생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장마가 시작된 탓인지 후덥지근한 날씨가 사람의 기분마저 바꿔놓은 듯합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대기 중의 습기는 차츰 높아지나 봅니다. 그에 따라 스트레스 지수도 비례하여 증가하고 말이죠. 하늘이 멀끔하게 갠 시간에 서둘러 산책에 나섰습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는 은행잎이 흩뿌려져 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에 나선 어느 할머니는 당신의 반려견이 새로 생긴 물웅덩이를 피하게 하느라 동동걸음을 칩니다.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양솽쯔 작가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음식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대부분이 생경한 것이지만, 작가의 섬세한 표현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움직여 창밖을 보았다. 열차가 마침 광활한 논을 지나고 있었다.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모두 황금빛 바다를 이루며 벼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논 너머에는 산이 있었다. 가까운 산은 푸르고 먼 산은 쇠붙이처럼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이었다. 산맥이 겹겹이 이어지고, 부드럽고 고요한 뜬구름이 곡선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나는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달아오른 뺨이 천천히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샤오첸이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음악 선율과도 같은 웃음소리였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웃음소리.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가슴을 눌렀다." (p.265~p.266)
돌이킬 수 없는 여름입니다.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덥고 습한 날씨가,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더위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우리는 그 사이 길거나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오고, 휴가지에서 보낸 고생담을 자랑스레 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을 되새기는 데 있다'고 썼던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여행의 되새김을 위해 우리는 그 힘든 여행을 매년 계획하고, 그 열기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에 우리의 인생처럼 갑작스러운 비가 한바탕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