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가웠습니다. 볼일이 있어 낮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 그늘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폐지 리어카를 끄는 어느 노인이었습니다. 흰색 야구모자에 얇은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크고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걸쳐 입은 노인은 옷에 자주 오물이 묻는 탓인지 앞치마도 꼼꼼히 챙겨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옷 밖으로 드러난 손과 얼굴은 온통 까맣게 타서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햇빛 속에 있었는지 자연스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로 무거워 보이는 폐지 리어카를 어떻게 끌 수 있을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노인은 횡단보도 근처의 작은 상점에서 모아 놓은 종이 상자를 말없이 뜯고 차곡차곡 간추려 리어카에 싣고는 준비한 노끈으로 단단히 묶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녹색 신호등이 켜진 것도 몰랐습니다. 노인이 떠나면 나도 길을 건너야지 생각했습니다. 종이 상자를 모두 싣고 바로 출발하려니 생각했던 노인은 자신이 종이 상자를 뜯고 간추리느라 인도에 떨어뜨렸던 작은 쓰레기들을 하나 남김없이 줍고 있었습니다. 그의 굽은 허리에 강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뼈만 앙상히 남은 마른 체구인 까닭인지 땀은 흐르지 않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굵은 핏줄만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다시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노인은 힘겹게 폐지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폐지 더미 뒤에 숨어서 슬쩍 리어카를 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습니다.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를 읽고 있습니다. 나는 작가가 꿈이거나 책을 쓰겠노라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작가의 삶에는 이상하게 끌립니다.
"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막다른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 (p.11)
코스피 지수가 8,000을 넘고, 어느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6억여 원을 준다지만 우리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그러나 갈수록 메말라가는 인정으로 인해 아직 오지도 않은 성하(盛夏)의 더위가 마치 살인마의 칼끝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노인의 폐지 리어카를 밀며 나의 양심마저 그 수레에 두고 돌아선 듯 느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