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란 때론 어떤 간절함에서 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지닌 준법정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법정신이란 이를테면 법을 잘 지킨다는 절대적 통념도 있겠으나 사회적 관습이나 자신이 세운 어떤 규칙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기대나 바람 등을 무시하지 않고 잘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준법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한 사람이 미루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간절함에서 오는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한 사람에게 어려서부터 주입된 준법정신과 그에 따른 실천 연습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소위 '밥상머리 교육'으로 불리는 유아기적 훈련은 개인의 준법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강화함으로써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생각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꽤나 좁혀주는 듯합니다. 이것은 비단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감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훈련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교육이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이른바 완벽한 교육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던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판단 기준이 서기도 전에 타인에 의해 형성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무척이나 많이 습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그 기준에 의해 자신의 욕망을 결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다 나쁘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 사회 생활에서 유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 등을 미리 습득함으로써 사회에 진출했을 때 크게 당황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더 유리한 선택을 취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지면서 자신의 자녀를 자유분방하게 키우겠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듯합니다. 시쳇말로 '금쪽이'로 키우겠다는 뜻이지요. 제 주변에서도 그런 부모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 자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또는 인생의 고비마다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간절함이 발현되기를 기다리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간절함에 기대어 의지를 불태웠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에게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간절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의무감과 같은 준법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고비들을 넘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말입니다.
부모의 자녀 교육에 있어 오롯이 자녀의 선택에 맡겨두고자 하는 부분은 그 영역이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 부모에게나 있을 테지요. 천주교를 믿는 우리 부부도 아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세례를 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종교만큼은 본인이 알아보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들은 종교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필요하다고 믿게 되면 스스로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겠지요. 이와 같은 결정은 우리나라의 종교 중 일부가 정치세력화한 데서 기인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아이들을 상대로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주입하고 그와 같은 행동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자신들의 수족처럼 부리겠다는 발상은 마치 그루밍 범죄를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공공연히 종교는 그루밍일 수밖에 없다고 떠벌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종교를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나는 뉴욕에 사는 여동생의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했었습니다. 안부를 묻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대학원에 다니는 큰조카와의 통화는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조카는 비록 힘이 약한 여성의 입장이지만 이스라엘의 잔인성을 목격하면서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참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이나 그보다 어린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정의는 어쩌면 학교나 종교단체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의 연대 속에서 정의와 사랑이 싹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당신이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어야 할 시간에 잠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준법정신의 부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실천력은 의지나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준법정신의 발현에 가깝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어릴 적 밥상머리 교육이 어떠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볼 듯합니다. 어쩌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