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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서른에 시린
  • 김보겸
  • 12,420원 (10%690)
  • 2026-03-08
  • : 115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말은 감정의 폭의 크지 않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두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노을에 하염없이 빠져들거나 일출의 장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예술가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을 다른 정상인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정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인은 예외로 한다는 규정 또한 갖고 있지 않다.


김보겸 작가의 에세이 <서른에 시린>을 읽는 내내 나는 그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것은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T나 F로 분류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T로 분류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예술가도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서란 다소간의 성향적 특성은 있을지언정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다. 누구나 같은 인간이라는 공통의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말로 표현되면 현실을 정의하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던 것을 나는 시로 썼고, 시를 쓰며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시를 쓴 까닭은, 내 마음을 움직였던 여운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가 주는 언어로 삶을 바라보는 노력은 사람들이 쉼을 갖고 싶을 때 하나의 답이 될 거라고 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p.52)


제목에 나이를 뜻하는 어떤 단어가 포함된 책이나 노래를 만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그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나의 기억 회로가 제목이 의미하는 정확한 나이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까닭에 텅 빈 머릿속이 한동안 멍한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김보겸 작가의 <서른에 시린>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에 'ㄴ' 받침이 들어가는 첫 순서이기도 한 '서른'이라는 나이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른, 마흔, 쉰, 예순...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고 시나브로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잔잔한 파동을 좋아한 것 같다. 사람들로 가득 찬 술집보다는 테이블이 몇 안 되는, 사장님의 손때가 묻은 식당이 편하고 정이 간다.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와 아침에 새로 한 듯한 김치, 사장님만의 특수 간이 되어 있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우면 술을 마시기 전인데도, 그 정경이 참 맛있게 느껴진다. 식당을 오고 간 지 십여 년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주방을 드나들며 반찬을 가져가는 단골손님의 넉넉한 웃음마저 정겹다."  (p.133~p.134)


사람의 마음도 나이가 듦에 따라 수분을 잃고 푸석푸석 건조해지게 마련, 다들 동안의 육체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촉촉한 감성을 유지하는 동심의 마음을 부러워했으면 좋겠다. 천천히 늙는다는 건 그 사람의 정서에 여전히 생명의 물기를 머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까닭이다. 젊은 사람들이 매우 논리적이거나 바른말만 하는 어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정서 역시 타인의 감정에 녹아들지 못한 채 점점 메말라가는 것이다.


"때마침 노을이 졌고, 노을 끝에 닿은 아내의 표정이 맑아 마음에 담았다. 생각해 보니 맑은 사람을 꿈처럼 담는 일에도 여러 감정이 요동쳤고, 그럼에도 그 감정의 끝에는 아내가 있었다. 시간에 무뎌지면 마땅히 느껴야 할 계절조차도 사전에 박힌 이름처럼 건조하게 지나갈 때가 있는데, 아내를 만나 마르지 않은 계절들을 보냈다. 한 사람을 내 안에 담는 일이, 한 세상을 담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 후로 한 걸음씩 하루를 놓는 일에 늘 다정하려 애쓴다. 시린 마음의 끝에서도 변하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는다. 그대 잇기에 한순간 꿈처럼 빛날 수 있었다."  (p.45~p.46)


지난 3월에 군을 제대한 나의 아들은 4월 9일에 출국하여 유럽 전역을 돌고 있다. 서른의 끝자락에 선 작가가 이렇게 흔들렸던 것처럼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 아들 역시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복학 준비를 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 '서른'이라는 나이를 경험하겠지만, 그것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은 통과의례라고 말해주고 싶다. '서른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서른이 시리다'고 썼다는 작가는 어쩌면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시점에 '마흔에 시린'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우리는 그렇게 불가능한 어떤 것에 끝없이 매달린다. 우리의 삶이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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