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직업적인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이웃, 혹은 가족이나 친척 중에도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는 듯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도와 당선시킨 후 그의 특별보좌관인가 뭔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그 친구마저 연락이 뜸한 상태가 되는 바람에 주변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숫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전무한 상태에서 언론과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형성된 정치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이미지는 온갖 부정적인 정보로 도배가 된 조악한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나에게 고착화된 그들의 이미지는 사기꾼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부류이거나, 적어도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뿔만 달리지 않았을 뿐 도깨비와 진배없는 형상이었습니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던 MB의 본심이 담긴 명언(?)을 듣고서 나는 '정치인=사기꾼'이라는 등식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그들 부류와 조금쯤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정치인을 완벽히 신뢰하거나 신뢰를 넘어 존경의 차원으로 발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분은 정치를 할 분이 아닌데...' 하는 식의 안타까움을 느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유권자들 앞에서는 아주 환한 미소를 보이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인상을 쓰기도 하고, 선거 때면 가장 낮은 자세로 악수를 청하다가도 당선이 되자마자 가장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쳐드는 그런 인간들이라는 믿음을 내 머릿속에서 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중동전쟁을 보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태도가 그닥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한 국가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을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그들의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할 뿐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들 국가의 국민이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전쟁이란 모름지기 명분이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런 정당성은 뒷전으로 한 채 '내가 하고 싶다는데 니들이 어쩔 건데?' 하는 식의 제국주의 논리에 의거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 국민 전체를 테러 대상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여행과 통신이 자유로운 현대에 있어 그들 국가의 국민은 언제든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안전을 방기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범법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국가의 국민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 아주 낮거나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는 선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깡패 짓거리에 대해 비판이나 논평의 글 또는 대담이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격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을 비겁한 자의 품에 숨게 만드는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함에 있어서도 정작 이를 발언해야 할 대통령이 침묵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겁을 먹고 뒤로 숨는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알려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비겁한 족속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스에 이스라엘 방위군인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썼던 것입니다.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논평과 찌질하기 짝이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논평이 있었지만 그것은 세계인의 상식과 논리에도 맞지 않는, 그리고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
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계인의 관점에서 언제나 정의와 평화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안위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국민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제한될 수도 있으며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전쟁을 촉발시킨 정치 지도자가 져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먼저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비단 금세기에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려의 문신 서희와 거란의 장수 소손녕의 담판에서도 전쟁의 명분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소손녕이 싸움도 하지 않고 군대를 물린 것도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은 어떤 명분도 없이 당사국인 이란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피해와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엑스에 올린 이재명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인해 '정치인=사기꾼'이라는 오래된 믿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재명과 같은 정치인이라면 적당한 신뢰를 표명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